▲ 전진삼 객원논설위원

 새해 새 아침이 밝았다. 본격적으로 새해 업무를 시작하는 주간이다. 설까지는 새해의 덕담이 연이을 것이다. 새해엔 좋은 일만 많으시기를, 건강하시기를, 사업 번창하시기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맞이하는 새해 아침은 늘상 풍요롭고, 생기발랄하다. 새해를 새해답게 맞이하는 것은 인사말뿐 아니라 사람들의 표정에서 살아나야 한다. 그럴 때라야 새해도 제 맛이 난다.

여의도로부터, 지방의 4대 강으로부터 들리는 분란과 불통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해를 여는 시민다수는 불안하다. 실시간으로 경제한파의 시름을 앓는 이들은 소시민이라 칭해졌던 우리의 가난한 이웃들이다. 그들에겐 이 겨울이 빨리 지나고 꽃피는 봄날이 빨리 들기를 바랄 뿐이다. 날이라도 풀리면 마음이라도 풀 수 있으려니 기대하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서울로 가는 수도권 1호선 전동차에 오른다. 아침 출근 시간이다. 전동차 안이 비좁게 느껴진다. 갑자기 내가 서 있는 곳 반대편에서 큰 소리가 난다.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옆 사람의 뒤통수를 문다. 전동차가 정차하고 출입문이 열린다. 여전히 사건의 실체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웅성거림이 도진다. “뭐해, 빨리 내리지 않고! 정신없는 놈 아니야.” 잠시 후 오랜 시간 노숙을 해온 듯한 걸인 행색의 남자 한 사람이 이른 아침임에도 술기운을 이기지 못한 채 좌우로 몸을 흔들며 나타난다. 항변이라도 하듯 들리지 않는 혼잣말을 내뱉는다. 시선은 땅에 박은 채 플랫폼을 걷고 있다.
큰 소리를 쳐댔던 예의 남자는 “아침부터 재수 없게 시리….” 한마디를 끝으로 전동차 안의 경직된 분위기를 정리한다. 고약한 냄새의 뿌리를 뽑은 전동차 내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서울을 향한다. 아니, 그 남자의 고성이 있기 전까지 이미 몇 정거장을 전동차 안의 사람들은 아무런 내색 없이 냄새로 절은 걸인의 악취를 맡으며 있었던 것이다. 소리를 죽이고 사는데 익숙한 사람들, 그들의 어정쩡함에 일침을 가한 목소리 큰 남자의 출현에도 그들 대부분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겨울철 전동차를 이용하다 보면 바로 곁에 선 한두 사람의 몸에서(그것은 대체로 남자들에게서 많이 경험되는데) 고약하게도 매운 냄새를 자주 맡게 된다. 돌아보면 대체로 행색이 남루한 사람들일 경우가 태반이다. 꾀죄죄한 옷차림, 땟물로 얼룩진 옷가지, 어두운 표정, 그들은 대체로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아 있기 마련인데 필시 전동차의 시발역부터 자리를 점유한 듯해 보인다.
승객들도 그들의 자유를 침해할 권한이 없다는 것을 아는 듯, 냄새의 근원지를 확인하게 되면 슬그머니 그 자리를 뜨고 마는 것으로 행동을 통일한다. 아침의 그 ‘재수 없는’ 걸인은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시간을 잘못 선택한 탓에, 졸지에 앉았던 자리에서 쫓겨나는 신세를 면치 못했지만 대부분의 노숙자들 또는 그와 비슷한 삷의 주체들은 남의 눈을 크게 타지 않는 낮 시간을 이용해 이동하기 마련이어서 전동차는 늘상 그들의 야릇한 냄새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그뿐인가? 정기적인 전동차 내부의 물청소가 무색하리만치 때론 만취자들의 토사의 흔적으로 악취가 배어있는 좌석에 앉을 때라니. 서민들의 고통은 그들이 즐겨 이용하는 대중교통 수단의 냄새를 피할 수 없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냄새의 근원지를 바라보면서도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언제든 그들 또한 같은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재수 없는’ 생각에 머리가 쭈뼛 서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보고도 못 본 체 하는 것이리라.
정치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생각하고 경험하며 유권자들의 삶을 돌아본다고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겨울 지하철 전동차 안에 배어 있는 고약한 냄새를 맡아보지 못한 인간형들이다. 구역질나는 냄새의 뿌리들 곁에 앉고, 서서 이용해야 하는 전동차의 환경이 얼마나 곤욕스러운지를 그들이 한두 번씩만 경험했더라면 지금처럼 국민의 불신을 자초하는 정치적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대통령은 어떠한가. 국민 다수에게 위기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은 쉬우나 서민들의 현장에서 그 맵고도 역한 냄새가 어떤 것인지를 모르는 통치형식을 고집하는 한 그는 교실의 문제를 나몰라라 하는 식의 성질 고약한 교장선생님일 뿐이다.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대통령은 교실 이데아를 끌어안아줄 작은 교실의 담임선생님과 같은 존재다. 냄새나는 학생들을 데려다가 따뜻한 물에 씻겨주고, 교실 안의 청정공기를 지켜주는 밑바닥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독려해주며, 기운 나게 해주는 그런 존재 말이다.

겨울 지하철 전동차 안의 냄새의 고약도는 서민들 삶의 온도계와 같은 것이다. 기왕 맡아야 할 냄새라면 사람들 몸에서 배어나는 향긋한 냄새였으면 좋겠다. 아로마 향기는 아니어도 깨끗이 몸단장하고 거리로 나선 서민들의 풋풋하고 상큼한 냄새를 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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