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래동요가 실험본 교과서에서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세계 공통 기보방식인 오선보를 사용치 않고 대행 음표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오선보는 음악 예술의 보편적 표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소리로 표현할 수 있는 음악 세상의 모든 것을 논리정연하게 담아낼 수 있는 소리의 그릇으로, 오랜 동안 인류가 갈고 다듬어 만들어 낸 음악 문화의 역사적 산물이다.

오선보에는 여러 가지 음악적 수단이 총동원돼 수록되는데, 그 질적인 수준과 양적인 표기 능력에 있어서 실로 놀랍다. 소리 예술의 채보 측면에서 이만한 능력을 가진 기보방식은 없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무소불위의 능력, 바로 오선보의 힘이다. 음의 고저표기 한가지만 봐도 그렇다. 다섯 개의 선, 곧 오선은 서양 사람들의 소리에 의한 느낌과 감정의 예술성을 담아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오선의 마력을 들여다보자. 첫 번째 선 곧 맨 아랫선을 첫째 줄이라 하고, 다섯 번째 선 곧 맨 위의 선을 다섯째 줄이라고 하는데, 오선의 위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가시적인 선은 기준선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낮거나 높은 음들을 무한대로 표기할 수 있다. 더 낮은 음들을 나타낼 때는 아래 첫째줄 또는 아래 둘째줄 등으로 내려가면서 표기하고, 반대로 더 높은 음들은 위 첫째줄 또는 위 둘째줄 등으로 올라가면서 나타낸다. 우리가 흔히 보는 ‘가온 다’의 ‘도’ 음의 양쪽에 ‘귀’라고 불리는 짧은 가로선이 붙어 있는 까닭은 아래 첫째 줄의 생략된 형태다. 이 때, 그 음에 ‘8’이라는 표시를 해주면 한 옥타브 높거나 낮은 음임을 단번에 읽어 낼 수 있다. 오선은 소리 예술을 담아내는 무한대의 USB 메모리라고나 할까.
이 외에도 길고 짧은 소리(리듬 Rhythm), 소리의 운동(가락 Melody), 소리의 어울림(화성 Harmony), 소리의 표현 방식(형식 Form), 소리의 끝맺음(조성 Tonality) 등의 표현 솜씨와 저장 능력이 무서울 정도로 완벽하다. 오선보에서도 서양 사람들의 합리적 사고방식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있다. 그것은 동시에 음의 진행 상태를 읽어 낼 수 있는 독보력에 있다. 높은 음과 낮은 음, 길고 짧은 음을 단번에 읽어낼 수 있다. 일러 동시성과 순간적 판별력이다(국악의 기보방식인 정간보도 우수한 기보법의 하나이지만, 동시적 순간 파악 능력은 오선보에 비해 약하다).
따라서 전래동요도 오선보를 고집할 필요가 있다. 아니 철저하게 그래야 한다. 세계 공통의 도구란 점이 그렇고, 무엇보다도 음의 감각을 익히기에 이만한 악보가 없기 때문이다.
〈즐거운생활〉 교과서를 보면 전래동요를 오선보로 나타내지 않은 노래들이 꽤 된다. 전래동요의 구성음(2음 또는 3음)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가락의 흐름을 그림 악보로 표현하고 있다. 노래의 소재에 따라 윷가락, 띠(테이프), 달, 기와, 단지, 덕석(멍석), 농립모 등의 그림 곧 구체물로 음의 높낮이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대행 음표’ 또는 ‘모양 음표’의 사용이라고 할까. 1학년 2학기 교과서를 보자. ‘동아따기 노래’는 남색과 파랑의 두 종류의 모양 음표 곧 띠(테이프)를 사용했는데 높은 음은 남색으로, 낮은 음은 파랑의 띠로 나타냈다. 두 음으로 구성된 노래임을 알리기 위해서다. ‘달두 달두 밝다’는 세 개의 달 모양의 대행 음표를 사용했는데, 노래를 이끄는 소리 ‘라’는 남색, 높은 소리 ‘도’는 빨간 색, 낮은 음 ‘미’는 노란 색의 달 모양으로 각각 나타내고 있다. 어린 아이들의 시각적 측면에서 효과를 거두려는 의도를 이해치 못하는 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선보에 나타내 주는 것이 음악 교육적으로 더 합리적이다. 왜?
국악 마니아 여러분,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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