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애자/시인

 사람처럼 심약해 상처받기 잘하고 희로애락에 대책 없이 노출돼 있는 생명체가 어디 또 있을까. 그런 ‘마음’을 가졌기에 사람이 사람일 수가 있을 것이다. 생김새나 성격이 다양하듯이 사고방식 또한 천차만별이어서 어떤 일에 대해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을 판별하기가, 그러니까 ‘정답’을 내기가 쉽지 않은 일이 너무도 많다. 지적인 것은 물론이지만 감성적인 데서는 개인의 차이가 더욱 심하다고 하겠다. 짧은 시 한 편이나 간단한 문구 한마디에서도 받는 감동이 사람마다 다 같을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따금 아주 간단한 한 문장 또는 짧은 시 한 편을 보고도 크게 공감을 느끼거나 깊은 감동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그것을 얼른 메모해 두었다가 나중에 붓으로 써서 책상 앞에 한동안씩 붙여두곤 한다. 예를 들면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든가 ‘평온한 바다는 결코 유능한 뱃사람을 만들 수 없다’, 혹은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등이 그런 것들이다. 물론 이런 것들은 나 개인이 느끼는 감정이므로 사람에 따라 별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줄 안다. 사람이란 살아온 내력이나 지금 자기가 머물고 있는 환경과 심리적인 상태에 따라 모든 것을 자기기준으로 자기중심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즈음 새롭게 마음을 사로잡는 글귀 하나가 무시로 위안이 돼 주기도 하고 일깨움을 주기도 한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싯귀다.

이것은 랜터 윌슨 스미스의 시 제목이다. 본문의 내용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앞부분인 1·2연의 내용은 이러하다.

- 어느날 페르시아의 왕이 신하들에게/ 마음이 슬플 때는 기쁘게/ 기쁠 때는 슬프게 만드는 물건을/ 가져올 것을 명령했다.// 신하들은 밤새 모여앉아 토론한 끝에/ 마침내 반지 하나를 왕에게 바쳤다./ 왕은 반지에 적힌 글귀를 읽고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만족해했다./ 반지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
그러나 정작 나를 감동시킨 것은 후반의 3·4연, 특히 3연 부분이었다.

        - 슬픔이 그대 삶으로 밀려와 마음을 흔들고
          소중한 것들을 쓸어가 버릴 때면
          그대 가슴에 대고 다만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그대에게 미소 짓고 기쁨과 환희로 가득할 때
          근심 없는 날들이 스쳐갈 때면
          세속적인 것들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이 진실을 조용히 가슴에 새기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
이 시를 처음 대했을 무렵, 나는 몹시 상심해하고 있었으며 지쳐 있었다. 삶을 공연히 고해(苦海)라고 했으랴.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런 근심 걱정도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사람에게도 자신으로서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지옥 같은 시련의 터널을 지나야 하는 경우가 있다. 평생을 아무런 고통도 겪지 않고 살았다면 그것이 과연 인간다운 삶이었으며 참다운 삶의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시련과 고통은 누구나 겪는 것이며 그러하기에 그것은 이 세상에 살다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길의 통과의례와도 같은 것이다. 우리들은 이 피해갈 수 없는 터널을 지날 때마다 체념과 한탄으로, 의지로, 혹은 신앙에 의지해 어려움을 이겨내려고 애쓰며 괴로워한다.

그런데 이것은 얼마나 명쾌하게 이 모든 것에 대해 답변을 해주고 있는가.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이것은 얼마나 희망적인 이야기인가. 또한 짧은 한마디이지만 자칫 교만함에 빠지기 쉬운 ‘잘나가는 사람’들 혹은 그런 ‘나’의 순간들에 대해 내리쳐지는, 얼마나 차갑고 준엄한 선고인가. 스스로도 놀랐던 것은 그 말을 되뇌이는 순간에 내가 어떤 위안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희망으로 다시 열리는 새해를 맞으며 2009년 한 해는 이 말로써 자신을 다스리며 위안을 받으리라 생각해 본다. 교만해지지 않도록 자신을 다스리고 깨우치기 위해서보다는 아마도 슬픔과 고통이 나를 짓누를 때 위안 받기 위해 더 자주 꺼내어보게 될 것이지만.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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