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청와대 지하벙커가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지난 6일 범정부 차원의 경제정책을 진두지휘할 ‘워 룸(war room-전시작전상황실)’인 청와대 비상경제상황실이 이곳에 차려졌기 때문이다. 원래 ‘워 룸’은 제1·2차 세계대전 참전국들이 설치했던 전시작전상황실에서 나온 말이었으나 근래에는 기업 또는 국가가 비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설치·운영하는 위기관리상황실로 사용되어진다. ‘워 룸’은 이름 그대로 전시에 실시간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대책을 수립하는 기능을 하는 곳으로, 따라서 ‘워 룸’은 최고·최적의 시설과 안전을 갖춘 곳에 설치된다.
청와대에 이 지하벙커가 설치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의 공격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대형 방공호를 만들었지만 실제로 사용한 일은 거의 없었으며 팀스피리트나 을지포커스 훈련 때 지휘본부로 쓰였다. 지하벙커가 ‘워룸’으로 본격 가동된 것은 참여정부 때로, 지진이나 안보 및 각종 재난사고 등 국가적 위기상황에 종합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각종 첨단장비를 들여오면서 NSC 사무처 산하에 위기관리센터라는 이름으로 설치됐다. 현재 지하벙커에는 위기정보상황팀이 근무 중이다.
이번 정부 들어 이명박 대통령이 을지훈련 기간 중 지하벙커에서 한 차례 국무회의를 가진 적은 있긴 했지만 평시에 이곳에서 회의를 주재한 적은 없다. 비상시국이나 훈련이 아닌 상황에서 이곳에서 회의가 이뤄질 경우, 국민에게 막연한 불안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국가 위기정보상황팀이 있는 청와대 지하벙커에 비상경제상황실을 설치한 것은 그만큼 경제위기 상황이 다급하다는 뜻을 강조하기 위함 일 것이다.
비상경제상황실은 이명박 대통령이 의장을 맡는 비상경제대책회의 직속의 상설기구로 1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청와대는 ‘워 룸’의 특성을 감안, 청와대를 정점으로 주제별 4개 분야로 업무를 분장, 전 부처가 참여하는 ‘경제 컨트롤타워’를 구축했다. 총괄ㆍ거시팀은 큰 틀의 경제정책 방향을 점검하고, 실물ㆍ중소기업팀은 실물경제 대책과 중소기업 지원책을, 금융ㆍ구조조정팀은 기업의 체질개선을, 일자리ㆍ사회안전망팀은 구체적인 일자리 창출대책과 서민ㆍ소외계층에 대한 지원방안을 마련하게 된다.

하지만 청와대가 지하벙커에 경제상황실을 설치한 것을 두고 말들이 많다. 청와대는 공간부족 등이 주된 이유이며 과잉홍보는 절대 아니라며 해명에 나서고 있지만 민주당 등 야당은 “전시행정의 표본이다”며 연이어 혹평을 쏟아내고 있다. 또한 일각에서는 과거 독재·권위주의 시절처럼 전시분위기를 연출해 위기의식을 고조, 국면전환을 시도하려는 저의가 깔려 있다며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이 같은 분위기에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진정성을 몰라준다며 서운해 하는 눈치다. “점퍼를 입고 근무할까도 생각했지만 위기의식을 조장한다고 할까봐 취소했다”며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이런 불신이 어디에서 연유된 것인지를 곱씹어 봐야 한다. 아무리 옳은 정책방향일지라도 어떤 내용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 결정 및 집행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며, 이해를 지속적으로 구함으로써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