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시인 하종오(49)씨가 4년만에 신작시집 「무언가 찾아올 적엔」(창작과 비평사刊)을 냈다.

하씨는 이번 시집에서 농촌과 도시, 윗세대와 아랫세대, 자기와 타자, 자연과인간, 삶과 죽음의 간극을 메워줄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서울 콘크리트집 마당에 서 있는 산초나무 캐어/시골 텃밭가에 옮겨 심고 돌아왔다/애초에 산초나무가 왜 날 찾아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밤이면 나란히 앉아 달쳐다보며 지냈다"로 시작되는 표제작은 "한철 뒤 시골 텃밭에 가서 말라죽는 산초나무 보다가/무언가 찾아올 적에는 같이 살자고 찾아온다는 걸 알아차리고는/다시 캐어 서울 콘크리트집 마당에 옮겨 심었다"로 이어진다.

산초나무를 '사랑하는 연인'이나 '영성스러운 그 무엇'으로 그려낸 것처럼 하씨는 일상의 사소한 대상들에 대한 범신론적 인식과 이를 현실적 삶에서 구현해낸 시세계를 보여준다.

따라서 하씨가 이번 시집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무언가'는 '저 높은 곳의 이데아'에 이르려는 수직상승의 욕구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대지의 숨결' 속에 거처를 삼으려는 수평적 삶의 태도, 거기서 나아가 땅속 뿌리의 생명에 닿으려는 하향적 운동성으로 나타난다.

그는 '하늘눈'이라는 시에서 "국거리 찬거리 다 준비하고 나니 내 텃밭도 넓다/사지삭신을 흙에 부리고 나면 하늘눈이 생겨나는가/저기 산에서 여기 나무에게로 슬며시 오는 그늘이 보인다/가지에 둥지 친 새를 따라 날아다니는 나무가 보인다/언젠가 남을 비웃던 날이 내가 땅을 치고 울 날로 보인다/수년 전엔 수직으로 보이던 내가 오늘은 수평으로 보인다"며 자연에 대한 깨달음(하늘눈)을 통해 존재에 대한 수평적 인식을 보여준다.

"저 홀로 직선으로 허공에 오르지 못하자/등나무는 그 푸른 힘을 밑으로 내려 퍼뜨린다"('살아서 가는 법' 중)거나 "누군가를 위해 빌딩이 수직으로 서 있다"('괴로운 수직' 중)거나 "먼 산이 보기엔 밤에 엘리베이터는 내려올 줄 모른다"('고층아파트' 중)고 노래한 시편에서도 '수평의 가치'와 '하강의 미학'을 추구하는 시정신을 읽을 수 있다.

'새가 먹고 벌레가 먹고 사람이 먹고' '시어미가 며느리년에게 콩 심는 법을 가르치다' '해거리' '아비는 입으로 농사짓고 아들놈은 손으로 농사짓다' 등 수록시의 대부분은 흙의 촉감과 자연과의 교감을 전하는 생태시들이다. 그러한 감각들이 구체적 생활 속에 육화돼 나타난 것을 두고 박영근 시인은 "삶과 생태가 일통(一通)하는 지점에 서 있다"고 평했다.

10여년 전부터 강화도에서 텃밭을 일구며 살고 있는 하씨는 "시인이 자본주의 현실에서는 무력하더라도 시 속에서만은 유능해질 수 있다"고 후기에 적었다. '유능하고 지혜로운 농부 시인'이 된 그는 인간의 삶이 근본적으로 흙의 소산에 의지하고있다는 거역할 수 없는 진리를 이번 시집을 통해 확인시키고 있다. 128쪽. 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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