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제훈 객원논설위원/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

 미국 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우리 경제도 그 영향으로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이 하루가 다르게 요동을 치고 있다. 우리 정치권은 경제위기 대책을 발빠르게 내놓기보다는 한동안 민감한 정치적 사안을 놓고 폭력이 난무하는 치부를 전 세계에 들어내 보이면서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지역을 들여다보면 한쪽에서는 세계 유수대학과 연구소를 유치하고 세계도시축전을 치른다고 세계 속의 인천을 홍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렇지만 다른 한쪽을 들여다보면 전문대 통합을 놓고 정치권이 결의안을 채택하더니 전문대 학장이 직위해제된 데 이어 파면을 당하고 전문대 집행부는 참석도 않는 소위 대학통합 지원대책 실무위원회가 구성되는 등 법석을 떨고 있다.
소위 시립대 통합이라는 사안을 놓고 논의하기 전에 그 용어를 정의하고 시작할 필요가 있다. 유럽 통합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스의 장 모네는 협상의 달인이 된 비결을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우선 쓰는 용어를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정의하고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시립대라는 것은 인천대와 인천전문대를 말하는 것일 텐데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인천대는 이미 작년에 국립법인화를 위한 법안을 시에 제출해 시가 조만간 국회에 법안 발의를 상정할 계획이다. 시가 법인화하기 전에 통합을 먼저 하겠다는 취지일지 모르지만 이미 인천대 문제는 더 이상 시립대 차원으로만 해결될 수 없다. 통합을 하려할 경우 교과부 및 기획재정부와 논의해 법인화 MOU를 다시 체결해야 하는 과정을 밟아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대학통합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영어로 통합은 integration이다. 나에게는 통합하면 지역통합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이 경우 통합은 각 나라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동의에 의해 민주적 과정을 거쳐 여러 나라가 경제나 사회 각 분야를 마치 한 나라처럼 만들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대학 통합은 이와는 달리 구조조정(restructuring)에 가깝다. 정부에서 권장하는 대학통합은 인구 감소에 따라 많은 지방대학이 부실화되는 것에 대한 대책으로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통합을 권장하는 것이다. 이 경우 통합 대상이 되는 대학은 유사 학과나 전공의 통폐합을 전제로 한다. 마치 기업의 인수합병(M&A)이 단순히 덩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경쟁력 있는 부분만 남기고 군살을 빼는 것과 같은 논리다. 작금에 인천에서 논의되는 대학통합은 마치 통합을 통해 규모만 늘리면 당장 명문대학이 탄생할 것 같은 백년에 한 번 올지 모를 만병통치약이 됐다. 세계의 대학 발전의 추세를 보면 이런 논리가 얼마나 허구인지를 금방 알 수 있다. 국내에서도 신흥 명문대학은 포항공대, 카이스트, 한동대 등 다 같이 규모가 작다. 덩치가 커지면 그 만큼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할 수 없으며 대학의 특성상 구성원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에도 그 만큼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교과부의 대학 평가의 방향도 규모가 아니라 1인당 학생에 대한 지원이라든가 교육의 질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대학발전에 소위 급물살은 없다. 정부나 기업 조직과 달리 구성원의 자발적 참여와 합의가 특히 중요한 대학에서는 변화와 발전에 시간이 필요하다. 동시에 구성원의 자율적 의사 결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대학은 창의성과 자발성이 요체다. 타인에 의해 강요된 변화와 발전은 단기적으로 어떤 성과가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대학의 생명력을 고갈시키는 것이 된다. 특히 대학통합, 그 중에서도 4년제 대학과 2년제 대학의 통합 같은 경우는 통합 이후에 구성원의 갈등요인이 매우 많기 때문에 특히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대학에 몸담지 않은 사람은 대학에서의 의사결정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시간에 쫓겨 구성원의 합의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일을 무리하게 추진하다가는 과거 10년 전에 저질렀던 우를 다시 범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에 금년에 미국 명문대학들이 분교설립 준비사무소를 여는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 인천대도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과 분교유치에 관한 MOU를 체결했다. 이제는 더 이상 그간의 시대착오적이고 폐쇄적인 구시대의 대학발전 모델을 고집할 때가 아니다. 지역대학과 국내외의 명문대학이 상호 협력과 경쟁을 하면서 국제경쟁력이 있는 대학으로 함께 비상하게 하는, 동북아의 중심도시로 비상하는 국제도시에 걸맞는 새로운 대학 교육의 발전모델을 기획하는 21세기 인천고등교육발전의 마스터플랜을 짜는 데에 우리 모두 다 같이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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