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의진 객원논설위원 인천정보산업진흥원 원장
요즘 TV를 사기 위해 쇼핑몰에 가게 되면 판매원한테 듣게 되는 얘기가 있다. 2013년부터는 모든 방송이 디지털로 방송되기 때문에 디지털 TV를 구매하라는 것이다. 정부는 아날로그 방송 종료를 당초 2010년에서 2013년으로 연기하고 디지털 방송 전환 준비를 해왔다. 그러나 2013년 디지털 방송 전환까지 3년 남짓 남아 있는데 반해 디지털 수신기 보급률이 23%, 시청자 인식률이 31%에 머물고 있다. 디지털 전환법이 국회에 계류 중이고 디지털 방송 전환에 2조여 원이 필요한데 비해 방송사들은 2012년에 가서야 투자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디지털 방송을 위한 콘텐츠 제작도 문제다. 디지털 방송으로 전환되기 위해 프로그램 제작사들의 디지털 관련 장비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며 이에 따른 비용부담 책임은 콘텐츠 제작사들이 떠맡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달 10일 방송통신위원회가 실무위원회를 가동했지만 정부의 구체적인 실행계획도 올 하반기에나 나올 전망이라고 한다. 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은 1998년 디지털 대처 법안을 마련하고 2002년 디지털 수신기 설치에 대한 의무화 법안을 제정했다. 2005년 12월부터 수신자 지원 대책으로 2조 원에 가까운 예산을 확보했고 시청자 인지도 향상을 위한 웹 사이트를 운영하고 방송협회를 통해 1조5천억 원을 홍보비로 집행했다고 한다. 이런 준비와 노력에도 미국은 2006년 12월 31일로 잡혀 있던 디지털 TV 전환시점을 2009년 2월 17일로 미루었고 2009년 2월에는 디지털 전환을 불과 몇일 앞두고 2009년 6월 12일로 다시 연기했다. 표면상 이유는 수신기 보급률 미달이라고 하지만 두 번에 걸친 디지털 전환 연기의 사례만 보더라도 정부정책 및 계획수립 등 제반 준비가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미국의 사례를 타산지석 삼아 디지털 전환으로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다음 사항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첫째, 구체적인 디지털 전환 정책과 재원확보가 필요하다. 디지털 세부 시나리오나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정책 외에도 방송사들의 디지털 방송 전환을 위한 재원조성과 디지털 콘텐츠 제작여건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이 도출돼야 하겠다. 이를 위해 디지털 전환 기금 등을 조성해 지원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만 하다. 또한 노령층, 장애인, 도서산간 지역 거주자 등 디지털 방송을 시청하기 어려운 디지털 소외계층에 대한 세부 지원 방안도 고려돼야 한다.
둘째, 가전제품 업체들의 디지털 방송 전환 투자에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디지털 방송 전환을 하기 위해서는 정부 재원조달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최대 수혜자가 될 가전·방송장비 생산자들의 비용분담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 보급형 셋톱박스를 개발하고 소외계층의 셋톱박스 설치를 담당하거나 디지털 방송장비 수익금 일부를 기금으로 출연하는 방법 등 자율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해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셋째, 대국민 홍보를 통해 디지털 방송 전환에 대한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 디지털 TV를 구입하는 방법 말고도 셋톱박스를 구입하거나 정부가 지원하는 저소득층의 기준, 케이블방송 HD수신기를 이용하는 방법 등 시청자가 반드시 알고 준비해야 될 사항을 홍보하고 국민들에게 비용부담이 최소화 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단순히 아날로그 TV에 스티커를 붙이거나 인터넷 및 방송홍보 등 일방적인 정보전달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홍보계획 수립 단계부터 이해도가 낮은 시청자들을 선별해 타깃홍보를 추진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디지털 방송 전환은 범국가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며 역사적인 사건일 뿐 아니라 IT 강국이라는 국가 체면을 위해서라도 정부는 신중하게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 다시 연기하는 사태가 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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