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설에 빠지다
저자 조혜란. 마음산책 출판. 352쪽. 1만3천500원.
몇 해 전 저서 ‘조선의 여성들, 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을 통해 역사에 묻힌 조선 여성들의 삶과 욕망을 복원해 냈던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조혜란(48)학술교수가 이번에는 ‘조선의 고전소설’들을 불러냈다.
새 책 ‘옛 소설에 빠지다’는 조선 초기 작품 ‘이생규장전’에서 후기 작품 ‘호질’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아끼는 고전소설 13편을 골라 소개하며, 독자들에게 옛사람들의 정서와 사유의 빛깔을 전한다. 특히 13편 모두 요약·발췌본을 수록하고 저자의 감상이 스민 해설(천천히 읽기), 소설 한 장면의 원문과 해석(깊이 보기), 함께 읽으면 좋을 작품(넓게 읽기)을 덧붙여 나름 입체적인 접근을 위해 애썼다.
저자가 읽어주는 소설들은 하나같이 입에 착 감기는 맛이 있다. 사랑을 다룬 작품을 보노라면 21세기 사람들만큼이나 대담한 사랑을 했던 옛사람들이 선연히 떠오르고, 양반 남성의 판타지를 다룬 작품들은 서사의 흡인력이 대단하다.
여기에는 고전소설을 우리 시대의 텍스트와 마주 보고, 자신의 언어로 풀어 읽으려는 저자의 노력이 한몫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금방울전’의 주인공인 금방울의 통통 튀고 지칠 줄 모르는 캐릭터를 데즈카 오사무의 애니메이션 ‘유니코’의 순진한 꼬마 악마의 캐릭터와 연관 짓는 식이다. 또 ‘남궁선생전’에 나오는 신선의 술법을 보면서 ‘동안(童顔) 만들기’의 과학적 근거를 찾기도 하고, 실의한 남궁선생에게서 현대인의 모습을 겹쳐 떠올리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여성’을 비롯한 약자들의 관점에서 텍스트를 읽는다는 점이다. 전쟁에서 죽어간 여성들의 처참한 모습이 그대로 등장하는 ‘강도몽유록’에서는 열녀 이데올로기가 이들에게 어떻게 죽음을 강요했는지 지적한다. 또 ‘오유란전’에서는 기생 오유란이 서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결말에 대해 ‘이 서사에서 이생과 김생은 고급 관리가 돼 서로의 관계가 더욱 확실해지는 반면, 하층민에 여성이면서 기생인 오유란은 존재감 없이 도구화하고 말았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재미있는 고전소설을 혼자만 읽는 게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며 “팅커벨이 나타나 어두운 공간에 반짝이는 정채를 더하듯, 박제된 시간의 전시품으로 기억될지도 모를 고전소설을 오늘날의 삶의 공간으로 불러내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채굴장으로

   
 

저자 이노우에 아레노. 시공사. 280쪽. 1만 원.
지난해 제139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이노우에 아레노의 소설.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수상자로 선정된 그녀의 작품은 탄탄한 문장력과 치밀한 구성으로 문학의 기본을 모두 갖췄다는 호평을 받았다.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된 유부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섬세하고 애틋하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지도 남쪽에 자리한 외딴섬. 섬에 하나뿐인 초등학교의 양호선생님 세이는 화가 남편과 함께 소소한 행복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신학기를 맞은 어느 봄, 도쿄에서 젊은 음악선생 이사와가 부임해 오면서 세이의 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작가는 남편을 사랑하면서도 다른 남자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을 억제하려는 주인공 세이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한편, 담담한 문체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특히 파격적인 전개나 파국으로 치닫는 결말이 없이도 독자로 하여금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퇴계잡영(이황 토계마을에서 시를 쓰다.

   
 

저자 이황. 염암서가 출판. 324쪽. 1만5천 원.
퇴계 이황은 만년에 교육에 뜻을 두고 고향인 토계(퇴계)마을에 정착, 46세(1546년)부터 65세(1565년)까지 직접 한시를 지었다. ‘퇴계잡영’은 그가 썼던 한시 중 48제 138수를 뽑아 한글로 상세하게 풀어놓았다.
수록된 시들은 모두 퇴계 선생이 토계마을로 물러나서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는 맑은 시냇물과 푸른 산, 새로 마음한 자리, 저녁에 뜨는 달, 철따라 바뀌어 피는 꽃 등과 같은 것들을 대할 때마다 저절로 흥이 나서 쓴 즉흥시들이다.
이를 통해 독자는 속세의 번잡함을 뒤로 한 채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의 관조적 삶의 태도, 소박하고 운치 있는 일상의 노래를 음미할 수 있다.
한문 원시의 한글 번역 뒤에 다시 산문으로 내용을 수록하는 등 어려운 한문 고전을 독자들에게 쉽게 소개하려는 역자(이장우, 장세후)들의 노력이 엿보인다.

나쁜 돈(BAD MONEY)

   
 

저자 케빈 필립스. 다산북스. 240쪽. 1만5천 원.
40년 가까이 미국 정치 및 경제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케빈 필립스가 밝히는 세계 경제 불황의 진짜 원인.
저자는 현재 미국의 도전과 실패는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같은 몰락한 세계 경제패권국들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며 일침을 가한다. 과도한 세계 진출, 낡은 정치, 지나친 부패, 에너지원 고갈이 모두 세계 패권국 미국의 쇠퇴를 알려주는 신호라는 것이다. 또한 워싱턴의 공공부문 및 민간부문 부채 촉진, 무능한 에너지 정책, 이라크에서의 큰 실책, 국제적으로 신망을 상실한 정치 지도력 모두에 대해 맹공을 퍼붓는다.
여기에 지난 20년 동안 투기적 금융이 미국 경제와 정치를 지배하게 된 과정을 샅샅이 파헤치며 ‘나쁜 돈’과 금융이 미국인들을 저버렸고 미국 자본주의가 세계 위기를 일으켰다고 신랄한 결론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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