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진삼 객원논설위원/건축비평가·광운대 겸임교수

 2009년 4월 10일 창영초등학교 ‘3ㆍ1독립운동인천지역발상지기념비’ 앞에서 ‘배다리문화선언’(이하 문화선언)이 선포됐다. 인천지역사회의 존경받는 원로로부터 학자, 교육계 종사자, 종교인, 문화예술인과 평생을 배다리에서 붙박이로 살아온 동네주민이 한마음으로 참여해 인천시 행정당국의 변할 줄 모르는 개발의 권력-의지를 성토하고,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리고 싶은 시민의 열망이 표출된 선언이다.
수년에 걸친 중·동구 관통 산업도로 무효화를 위한 주민들의 끊임없는 저지운동은 배다리역사문화공간의 재구성이라는 대안의 제시에 이르는 동안 힘없고 빽없는 지역민이 보여줄 수 있는 인내의 한계지점을 노정했고, 반면 지역연구에 기반한 역사문화공간의 현장성의 가치를 축적해온 것이 사실이지만 이번 문화선언이 특별한 의의는 남의 집 불구경하듯 좀체 움직이려들지 않던 지역기반의 지식인사회가 대거 동참하는 대동단결의 결실을 맺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문화선언은 그 자체로 반민주적 절차에 대한 민주시민사회의 강력한 경고에 다름 아니며, 시행정의 일방적 권력-의지에 맞서는 최후의 통첩행위와 같은 것이다. 이제 ‘배다리’는 개발에 저항해 장소의 시간성을 소중히 여기는 지역문화운동을 국내외에 발신하는 전진기지로서 새로운 옷을 갈아입은 것과 같은 위치에 올라섰다.

이는 필시 인천시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분위기의 반전인 셈이다. 좀 더 지혜로운 행정당국이라면 지역의 여론을 주도하는 시민사회 핵심 구성원들의 행동통일이 함의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의문을 가져볼 때다.

오는 8월 초 세계도시축전의 개막을 앞두고 있는 인천의 모든 행정력은 축전의 성공적인 개최를 향해 조준되고 있는 형국이다. 국내외적으로 침체된 경기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현재의 급박한 경제상황은 축전의 성패를 논하는 것조차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최악의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행정당국의 입장에서는 축전의 파국을 예상하거나, 그런 조짐을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지역의 해묵은, 그러나 여전히 중요한 현안을 방기한 채 신자유주의 개발모형도시인 송도국제도시를 중심으로 한 도시축전의 기획은 자생적 기층문화의 보전과 발전방안의 모색 이전에 소비주도형 문화 장려 등으로 미래도시의 환상을 패키지화한 기이한 도시문화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천시는 송도국제도시로 상징되는 인천경제자유구역의 도시마케팅 차원에서 도시축전을 개최한다고 하지만 ‘80일간의 미래도시여행’이라는 행사 기획의 본령은 통상의 ‘축전’(Festival)의 의미보다는 ‘오픈시티’(Open City)로서의 프로그램 개발과 행사유치가 필요했음에도 주행사장을 송도국제도시에 한정시킴으로써 메트로폴리스 인천의 준비된 문화적 층위를 골고루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간과하고 있음이다. 이런 현실인식 하에 이번 문화선언의 의의를 되새겨보면 그것이 도시축전의 안티테제로서 작동할 개연성이 높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약속의 땅이라고 믿고 싶은 송도국제도시의 홍보 성패가 인천의 미래를 견인한다는 발상의 유치함을 치유할 수 있는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존재를 확인하고 추진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이 또한 도시 인천의 정체성을 확인받을 수 있는 지역문화의 원천지대라면 그것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배다리가 그런 곳이다. 도시축전의 성패를 상징 짓는 표본도시로서 배다리를 바라보는 인천시의 시선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가 아닐 수 없다.

문화선언의 선포지역인 배다리는 더 이상 지역 내 작은 도시동네의 한계성을 벗어나 있다. 배다리는 곧 무소불위의 행정권력에 저항하는 문화지구로서 지역주민과 시민사회가 함께 사수하는 지식인 네트워크에 의한 시민바리케이트에 다름 아니다. 그런 면에서 산업도로건설 재개는 시민의 정신을 짓밟는 무력행위와 같은 것이며, 무력에 의해 꺾인 시민정신은 누구도 예기치 못한 새로운 방어기제를 탄생시킬 것이다. 도시문화의 진정성을 회복하기 위한 문화적 대응이 영화 ‘전함 포템킨’과 같은 양상으로 전개돼서야 되겠는가?
인천을 사랑하는 방식의 차이라기보다는 인천의 미래를 향한 시선의 끝이 다름에서 온 이번 배다리산업도로 건설과 폐지의 문화적 항전의 포고가 인천의 참된 발전의 지표를 세우는 용기있는 선택의 결과로 낙점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문화선언에 대한 인천시의 역사문화주의적 결단을 촉구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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