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華城)’은 조선 고유의 축성법을 기본으로 중국과 일본, 서양의 축성기술을 받아들여 축성된 조선후기 축성문화의 결정체다.

화성의 축성 과정과 축성 당시 사용된 과학 기자재, 정조대왕의 위풍당당한 모습, ‘화성성역의궤’와 정조의 비밀어찰 등 화성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수원화성박물관은 정조시대 사상과 문화를 아우르며 수원시 문화 발전의 초석이 될 것이다.

세계문화유산 ‘화성’의 우수성과 정조의 개혁정신을 알리기 위해 27일 개관식과 함께 문을 여는 ‘수원화성박물관’을 찾아가본다.<편집자 주>

 # 박물관 규모 및 전시공간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창룡문길에 위치한 수원화성박물관은 화성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보다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안내와 정조시대 문화 융성의 모습 및 화성의 우수성을 알려주는 전시공간으로 구성됐다.

토지보상비와 공사비 등 총 625억8천200만 원의 사업비를 들여 세운 박물관은 부지 2만3천173㎡, 총면적 5천635㎡에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로 1천367㎡의 전시실과 운영사무실(573㎡), 편의시설(170㎡), 수장고(1천72㎡), 기타 시설(2천453㎡) 등으로 구성됐다.

박물관은 우선 크게 세 곳의 전시공간으로 구성됐다.
야외전시와 화성의 축성 과정을 알려주는 ‘화성축성실’과 화성의 다양한 문화를 알려주는 ‘화성문화실’이다.

야외전시의 대표적 전시물은 바로 거중기와 녹로 등 화성 축성에 사용된 과학 기자재다. 높이 11m에 이르는 녹로는 화성 축성 당시 높은 성벽을 어떻게 쌓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전시물은 바로 정조대왕의 ‘태실’이다. 조선시대 국왕의 태실은 일반인들이 관람하기 어려운 곳에 위치한다.
특히 정조의 태실은 무척이나 아름답게 조각돼 있기 때문에 화성을 축성한 정조의 태실을 일반 관람객을 위해 똑같이 모각해 전시했다.

‘화성축성실’은 정조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으며 당시 정조가 화성 행차 시 입었던 황금갑옷 기록을 통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제작, 전시했다.

화성 축성에 사용된 축성 기법을 확인하는 모형과 화성 축성을 알려주는 ‘화성성역의궤’와 화성유수 조심태에게 하사한 정조의 비밀어찰, 규장각과 박물관만이 소장하고 있는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弘齋全書) 완질본 등 다양한 기록유산을 전시한다.

여기에 사도세자가 대리청정을 하면서 국왕을 대신해 관리를 임명한 국내 2점밖에 없는 왕세자 유훈교서를 전시한다.

‘화성문화실’은 1795년 윤 2월에 있었던 정조의 8일간의 행차를 재현하는 내용이다.

정조는 위민정책의 추진 과정에서 화성행차를 단행했고, 이 행차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수많은 백성들이 찾아왔다.

이 같은 정조의 행차를 보여줄 수 있는 팔폭병풍 모사도와 화성유수 번암 채제공의 영정, 정조가 하사한 비밀어찰과 필사본인 번암선생집을 전시한다.

이와 함께 화성의 장용영 군사들의 복식과 무기를 전시, 조선시대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영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으며, 박물관 내에 있는 영상실과 강의실을 통해 평생교육 공간으로 활용한다.

 

   
 
# 개관 기획전

박물관 개관식이 열리는 27일은 정조대왕 즉위일인 1776년 3월 10일이 당시 양력으로 환산하면 4월 27일로, 그 의미가 크다.
이날 열리는 개관기획전은 ‘정조, 화성과 만나다’라는 주제로 화성행궁 및 화성장대에 있던 편액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대여, 전시하고 서울대박물관에서 정조가 직접 그린 매화도와 화성추팔경의 모습을 김홍도가 그린 서성유렵(西城羽獵)과 한정품국(閒亭品菊), 정조의 세자책봉도가 함께 전시된다.

 # 박물관의 대표 전시물
▶왕세자유훈교서-화성축성실=영경기관찰사겸병마수군절도사순찰사개성부유수강화부유수광주부유수조돈서(令京畿觀察使兼兵馬水軍節度使巡察使開城府留守江華府留守廣州府留守趙暾書), 1757년(영조 33), 필사본, 335.0×90.0㎝.
사도세자(思悼世子, 1735~1762)가 1757년 조돈(趙暾, 1716~1790)을 경기 관찰사 겸 병마수군절도사, 순찰사, 개성부 유수, 강화부 유수, 광주부 유수로 임명한다는 내용의 문서다. 이 문서는 사도세자가 대리정청 시 내려준 영서(令書, 왕세자가 왕을 대신해 정치할 때 내리는 명령서)로 현존하는 2개의 문서 중 1개다.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화성축성실=화성성역의궤(영인본 1996년, 36.8×22.8㎝)는 1801년(순조 1) 화성 성곽 축조에 대한 기록을 모아 간행한 책으로, 총 10권 9책으로 이뤄졌다.

   
 

1801년 7월 28일 간인을 명해 1801년 9월 18일 반포했다. 원본은 규장각과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돼 있으며 수원시에는 사운 이종학(1927~2002)선생이 1996년에 영인한 ‘화성성역의궤’ 영인본이 보관돼 있다.

‘화성성역의궤’는 1796년 11월 완성, 화성 축성 방법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축성에 사용된 각종 기계의 그림과 설명이 수록돼 있어 당시 건축기술과 과학의 수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거중기(擧重機)-야외전시실=거중기는 정약용이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 작은 힘으로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릴 수 있도록 고안한 장치다. 정약용은 중국에서 들여온 ‘기기도설(奇器圖說)’을 참고해 거중기를 개발했다.
거중기는 현재 도량형으로 7t을 들어 올릴 수 있는 기능이 있었으며 주로 채석장에서 수레에 큰 돌을 실어 올리는 역할을 했다. ‘화성성역의궤’에는 거중기 전체도 및 부분도가 상세히 그려져 있으며 축성 시 1대가 사용됐다고 전해진다. 
▶녹로-야외전시실=녹로는 거중기와 함께 활차(滑車, 도르래)를 이용,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데 쓰이던 기구다.

각목으로 네모난 틀을 만들고 틀의 앞쪽으로 긴 지주 구실을 하는 간목 둘을 비스듬히 세운 뒤 간목 꼭대기에는 활차를 달고 나무틀의 뒤쪽에는 얼레를 설치, 동아줄을 얼레와 활차에 연결하고 줄의 반대쪽에 물건을 달아맨 뒤 얼레를 돌려 줄을 감으면서 물건을 들어 올리도록 했다.

   
 
1796년(정조 20) 수원 화성을 쌓을 때 두 틀을 만들었다고 하며, ‘화성성역의궤’에 따르면 높이가 11m에 이른다고 돼 있어 화성 축성 당시 높은 성벽을 어떻게 쌓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번암초상화(樊巖肖像畵)-화성문화실=1791년(정조 15) 화가 이명기가 그린 번암 73세 때의 비단채색의 초상화(176.5×90.2㎝, 보물 1477호)로 정조 41세의 어진이 그려진 후 이명기가 정조의 명을 받아 그렸다.
초상화는 번암이 오사모에 분홍빛 단령을 입고 화문석 위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좌측 눈의 사시 기운까지 표현되고 있는 점에서 매우 사실적임을 알 수 있다.

좌측에는 임금이 하사한 부채와 선추는 물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감싸고 있는 모든 것이 군주의 은혜라 감격하는 번암 자필의 찬문이 적혀 있다.
▶교지(敎旨)-화성문화실=1799년(정조 23) 2월 19일 정조가 번암에게 문숙이라는 시호를 내린 문서(필사본, 110.0×78.0㎝)다.
문(文)은 민첩하고 학문을 좋아함을 뜻하고, 숙(肅)은 마음가짐을 과단성 있게 하는 것을 뜻한다.

▶정조어찰첩(正祖御札帖)-화성축성실=박물관 소장본인 정조어찰첩(1794~1796년, 38.2×53.3㎝, 필사본)은 모두 15통으로 화성을 건설하는 기간에 건설을 책임지고 있는 조심태에게 정조가 보낸 일괄 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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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는 화성유수 조심태에게 이들 편지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말 것을 지시한 것으로 보아 비밀편지에 속한다.
또 화성 건설과 관련, 정조의 직접적인 지시사항과 지대한 관심의 정도가 분명하게 밝혀져 있어 건설 과정을 이해하는 1차 자료로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자료적 성격과 가치가 아주 크다고 볼 수 있다.
▶정조태실-야외=강원도 영월에 있는 정조의 태실을 모각했다. 일반적으로 왕실의 태실은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힘든 곳에 있는 만큼 문양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정조의 태실을 복제, 전시했다.

▶서북공심돈 내부-화성문화실=일반인들은 잘 볼 수 없는 공심돈 내부의 모습으로 적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는 모습을 재연했다.

# 김용서 수원시장 인터뷰
   
 

“수원 ‘화성’이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후 국내·외 많은 관광객들이 화성을 방문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김용서 수원시장은 ‘수원화성박물관’ 건립 취지에 대해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은 그 동안 학술연구센터와 관광 인프라가 부족했다”면서 “이번 박물관 개관으로 관광객에게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고품격의 볼거리를 제공하고 역사에 대한 깊은 감동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시장은 “특히 정조대왕께서 즉위한 1776년 3월 10일을 올해의 양력날짜로 환산하면 4월 27일로, 이날 개관일은 매우 뜻깊은 날”이라고 강조했다.

김 시장은 “박물관에는 기증 유물 147점과 구입 유물 593점 등 740점의 유물을 갖춰 놓고 있다”면서 “소장유물인 국가보물은 번암 채제공 초상화(보물 제1477호)를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김 시장은 향후 추진계획에 대해 “앞으로 정조시대 문화와 예술 발전에 대한 연구를 전문적으로 추진, 명실상부 세계 유수의 박물관으로 만들 계획”이라며 “‘효’정신과 백성을 사랑하는 정조대왕의 사상 등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시장은 “박물관은 화성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화성에 대한 우수성과 우리 역사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돕고 지역문화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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