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제훈 객원논설위원/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

 요즈음 일주일이면 몇 번씩 부고가 날라든다. 대부분 친구 동창이나 직장 동료의 부모님이나 장인·장모상이다. 그러나 가끔 당사자의 부고가 오면 처음에는 혹시 잘못된 부고가 아닌가 의심이 날 때가 있다. 특히 얼마 전까지 같이 일을 하거나 자주 만났던 가까운 사람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인생무상이라고는 하지만 이러한 부고를 받고 보면 나름대로 충격이 크다. 요즈음 이러한 가까운 사람의 때이른 죽음 소식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금융위기라 해서 경제는 어려워지고 북한의 로켓발사로 한반도가 다시금 긴장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것도 같고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뇌물을 받았다는 소식 등 정신없고 재미없는 소식들로만 찬 이 세상에서 갑자기 떠나가는 사람 소식을 들으면 마치 우리를 둘러싼 이 모든 것들이 허상 같다. 어쩌면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과 이 번잡스러운 세상에 대해 거리를 두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명령하는 것 같다. 어차피 모든 인간이 죽을 텐데 살아있는 동안에 돈과 권력 그리고 명예를 좇아서 아둥바둥하는 모습이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죽음을 생각하면 겸손하게 되고 종교적 귀의를 생각하게 된다. 모든 종교가 사후의 세상을 이야기하고 영생과 부활을 이야기하지만 결국은 현세에서의 정신적 안위를 얻고자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일 수밖에 없다.
마음의 평화는 종교와 신앙에 의해 얻어질 수도 있지만 우리 같이 속세에 물들은 사람들은 결국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세상의 고통의 대부분은 자연재해보다도 인간이 만든 인재(人災)그리고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가 모든 문제의 근원인 것 같다. 부모와 자식 그리고 부부 등 가족 관계 그리고 친구와 동료 관계 등이 그렇다. 주위를 둘러보면 인간사 고통의 뿌리는 가까운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나는 모든 문제는 소통의 문제라고 본다. 이해관계가 다른 경우라 대화로 풀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그렇지만 서로 전쟁을 한 나라와도 대화와 협상으로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예도 많다. 가까운 사이에도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해관계보다는 감정의 문제 그리고 소통의 부족에 따른 오해인 경우가 많다.
서로 이해하고 오해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시간이 필요하다. 감정이 개입돼 있을 때는 어느 정도의 냉각기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너무 오래되면 오히려 되돌릴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필요한 것은 신뢰를 쌓는 것이다. 이것은 서로 솔직한 대화의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상대방을 잘 안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에 한 번 오해가 생기면 잘 안 풀릴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로가 자신이 잘못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감정이 앞설 수 있고 욕심을 가질 수 있으며 잘못 판단할 수도 있다는 것을 서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 즉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출발점이다.
인간이 유한한 존재이고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나이가 되면 이러한 상대방의 배려와 이해는 더 쉬울 수 있다. 그러나 주변에 보면 나이가 들면서 아집이 더 늘어나고 자기주장만 늘어가는 사람도 많다. 특히 출세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된다. 당장 내 자신도 그렇게 늙어 가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특히 제자들에게 모범이 되지는 못할 만정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이비 가톨릭 신자인 나는 얼마 전 부활절 미사에서 신부님이 새삼 이야기한 부활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만이 아니고 영생하는 것이 부활이라는 말씀이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인데 다시 살아난 것보다 영생에 무게가 두어진다.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은 죽은 다음의 영생이 아니라 죽음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살아있는 동안 가까운 사람들과 서로 겸손하고 배려하고 이해하면서 서로 미워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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