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식 인천문협 회장/시인

 경인운하의 새 명칭이 ‘경인 아라뱃길’로 결정됐다고 한다. 지난달 30일자 지역의 모 일간지 기사에 따르면 “국민적 여망 속에 추진되고 있는 경인운하”의 이름을 ‘경인 아라뱃길’로 정하고 5월 1일부터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서울의 한 일간지는 한국수자원공사가 ‘경인 아라뱃길은 단순히 뱃길 하나를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새로운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하면서 21세기 녹색 성장을 선도할 명품 뱃길을 여는 역사적 사업’이며 ‘역사에 없었던 새로운 뱃길을 제대로 만드는 첫 걸음’이어서 그에 맞는 새 이름을 지었다는 기사를 싣고 있다. 이 명칭의 탄생은 지난 3월 ‘경인운하 새 이름 지어주기 국민공모’와 ‘전문가 및 전문기관의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이루어진 것으로 돼 있다. ‘국민공모’를 알지 못했으니 그에 대해 할 말은 없으나, 어느 전문가와 어느 전문기관이 의견 수렴에 응해 이런 이름을 최종 확정토록 했는지 몹시 궁금하면서 한편 의문도 남는다.
물론 그 궁금증과 의문은 무엇 때문에 이 운하의 이름을 지금 당장 공모까지 하면서 새로 붙이려 했느냐 하는 점이다. 애초 이 물길 건설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 오늘까지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경인운하라고 불러 왔는데 지금 바꾸어야 할 무슨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는가. 더불어 이런 억지 작명이 도대체 어떻게 전문가나 전문기관의 ‘의견 수렴’을 거쳤을까.
새로운 작명 이유에 대해 수자공 김 사장은 앞에서 인용한 대로 ‘역사에 없었던 새로운 뱃길을 제대로 만드는 첫 걸음’을 떼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경인 간에는 역사적으로 고려시대 때부터 조선 때까지 두 차례의 경인운하 굴착 실패가 있었다. 이제 그 성공을 ‘제대로’ 보장하는 첫 걸음이라 해서 ‘아라뱃길’은 억지가 아닐 수 없다. 차라리 운하 건설에 대한 반대 견해에 대해 이렇게 신조 명칭을 통해 다소나마 주의를 환기시키려는 의도였다면?
그러나 아무리 해도 ‘아라뱃길’이라는 작명은 자연스럽지도, 지역적으로 맞지도 않는다. 이 명칭의 선정 이유로 ‘아라’가 ‘민요 아리랑의 후렴구 ‘아라리오’에서 따온 말로 ‘우리 민족의 멋과 얼, 정서와 문화가 흘러가는 뱃길이라는 뜻과 서울과 인천을 잇는 뱃길에 대한 800년 민족 숙원을 담는’ 동시에 ‘발음이 편하고 이해하기 쉬워 친근하게 부를 수 있으며, 한강의 옛 이름인 아리수를 연상하는 효과는 물론 서해와 한강을 잇는 뱃길을 자연스럽게 강조할 수 있다’는 등등을 장황하게 들고 있지만 전혀 어색할 뿐이다.
물론 아리랑이 우리 민족 전체의 대표 민요이니 어느 곳엔들 통용이 안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 개항 이후 인천에서 한때나마 일제 압제에 대한 탄식과 하소를 표출하던 ‘인천아리랑’이 불리어지기도 했으니 ‘아라’의 작명이 전혀 그르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찜찜하다. 아무리 해도 서울이나 인천이 ‘아라’의 고장은 아닌 듯 싶기 때문이다. 수자원공사가 말하는 대로 아리랑의 ‘아라’가 의미하는 물길의 상징이라면 강원도, 그 중에서도 정선 같은 곳이 아닐까. 아리랑의 한(恨)은 오늘날까지 강원도를 중심으로 면면히 토착하고 있어, 우리 국민 다수의 정서가 ‘아라리 물길’의 대표적인 고장으로 오직 그곳을 떠올린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라’라는 말이 아무리 어감이 좋고, 의미가 훌륭하다 해도 이 작명은, 특히 서울, 인천지역에는 생경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전문가’나 ‘전문기관’들이 바로 이런 점을 간과한 것 같다.
굳이 운하 명칭을 바꾸어야 했다면 차라리 옛날 강화에서 인천의 해물과 젓갈을 싣고 한강을 거슬러 서울, 충북, 강원도까지 가서 부리고, 다시 곡류와 땔감을 실어 왕복하던 배 이름을 따 이른바 ‘경인 시선(柴船)뱃길’로 하는 것이 훨씬 나았을 것 같다. 역사적, 민속적으로도, 또 오늘날 따지는 경제적 효용으로도 이 뱃길의 이름에 딱 부합하지 않는가. 
‘세계가 함께하는 명품 뱃길, 경제와 환경과 미래를 포괄하는 부가가치 높은 글로벌 브랜드 뱃길을 약속한다’면서 정작 이런 자신의 역사적, 민속적 의미는 살리지 못한 채 난데없는 억지 작명, ‘경인 아라뱃길’을 운하 이름이라고 들고 나온 것이다. 한 번 지어지면 다시 고치기 어려운 것이 이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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