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거리 선수처럼 열차를 따라잡기 위해 죽어라고 달렸다. 뭐든 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의 열일곱 살이 함께 달렸다. 열일곱 살은 그런 나이였다. 의욕과 능력의 거리가 너무 멀어 슬픈. …나는 열차 꽁무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니, 길이 쓰러질 때까지 달리기로 했다. (본문 262p 중)’
인천을 대표하는 여류작가 김진초가 장편소설 ‘교외선’을 출간했다. 소설집 ‘옆방이 조용하다’ 등을 통해 세상을 감싸 안는 넉넉함을 보였던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한없이 씁쓸하고 또 새콤했던 지난 시절의 추억을 독자에게 선물한다.
소설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남과 다르게 살고 싶다는 욕구와 호기심으로 가득 찬 한 산골소녀가 아버지의 사망으로 인해 어렴풋이 인생을 알아가는, 사춘기 소녀의 성장이야기를 담았다.
작가는 산골소녀의 눈을 통해 그 시절 집단 따돌림, 1·21사태, 풋사랑, 개똥철학, 평화시장 미싱사, 도시염탐, 물난리 등을 응시한다. 그 안에는 지난 시절의 슬프지만 따뜻한 가난이, 무장공비가 환기시키는 이데올로기의 맹목이, 교복과 미싱으로 대표되는 사회의 갈라진 골이 빼곡히 담겨 있다.
또한 김진초 문체의 특징인 세밀성과 농밀성은 이번 작품에도 여실히 녹아 있다. 그만의 섬세한 필치는 인생의 핍진함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끌어올리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해낸다.
평론가 이경재는 “교외선이 송추와 서울을 이어줬던 것처럼 열한 살 소녀는 이후 원고지라는 레일 위에서 고독한 인간들의 영혼에 소통의 물길을 여는 작가로 성장한다”며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진정으로 성장한 것은 열한 살 소녀가 아니라 바로 독자 자신임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평했다.
김진초는 지난 1997년 계간 ‘한국소설’에 ‘아스팔트 신기루’로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 소설집 ‘프로스트의 목걸이’, ‘노천국 씨가 순환선을 타는 까닭’, ‘옆방이 조용하다’, 장편소설 ‘시선(2006 인천문학상 수상작)’ 등을 펴냈다. 현재 계간 ‘학산문학’의 편집장, 월간 ‘한국소설’의 편집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