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를 심은 논에 흐르는 물소리도, 작업기들의 시끄러운 소리도 그에게는 하나의 음악소리다.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면 풍년은 뒤따라온다는 정찬희(26)영농법인 제일합명회사 기획실장.
정 실장이 있는 영농법인 제일합명회사는 김포시 하성면에 위치해 33만580㎡(10만 평)의 규모에서 고시히카리를 재배하고 영농 대행, 납품까지 하는 대규모 농장이다.
이곳에서 음악이 좋고 춤이 좋다는 농사뿐만 아니라 마음도 풍년인 정 실장을 만났다.

 # 논이라는 무대 위에 춤추는 농업인

춤추는 농업인 정 실장은 어렸을 때부터 춤이 좋아 엔터테이너를 꿈꿨다.
정 실장은 “어렸을 때는 마냥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 좋았다”며 “친구들과 함께 춤추는 것이 나의 일과였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이뤄 놓은 농업의 길을 물리치기는 어려웠다.
제일합명회사의 대표이자 정 실장의 아버지인 정성채(52)씨는 정 실장에게 농업을 권했고, 생각 끝에 차근차근 배워 가자는 마음으로 한국농업대학을 거쳐 현재 회사의 기획실장을 맡고 있다.

정 실장은 “아버지 밑에서 경영부터 실질적인 농업 기술까지 배워 가고 있다”면서 “회사의 규모가 크고 당시 일손도 많이 부족해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농사일이 좋다는 정 실장은 “대학 시절 시야를 넓히고 스스로 배우고자 미국의 화훼농장으로 실습을 지원했는데 그때 우리나라와 다른 시스템과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역시 나에게는 동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지금의 벼농사가 딱인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즘은 요식업에도 관심이 많고, 아직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정 실장의 모습에서 그가 지금 하고 있는 벼농사는 힘들게 하는 일이라기보다 열정을 갖고 즐겁게 하는 취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언제나 리더의 마음으로…

정 실장은 대충을 싫어한다. 한 번 시작한 일은 끝날 때까지 계획적으로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 실장은 “일을 시작할 때 항상 목표를 정하면 성취감도 높아지고 효율성도 좋다”며 “그냥 앞만 보고 무작정 일하는 것보다는 장기적이건, 단기적이건 항상 목표를 가지고 일하면 동기부여도 되고 결과도 좋다”고 말했다.

또 “아무리 아버지 밑에서 일을 한다고 하지만 항상 일을 지휘하는 리더라는 생각으로 임한다”면서 “시키는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하면 발전도 없을 뿐더러 벼농사는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벼를 모판에 담가 소독하는 것부터 쌀로 가공되는 것까지 계획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리더십은 농장으로 파견되는 실습생들과 일을 할 때도 나타난다.

정 실장은 “제일영농은 10여 년 동안 한농대 실습농장으로 선정돼 한 달에 2명씩 실습생들이 파견되는데 같이 일할 때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체계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무조건 일만 시키지 않는다”며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 생각하고 그대로 일을 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  한 발 더 전진하기 위해…

정 실장의 열정은 ‘농업 토론회’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 실장은 “대학생들도 있고 현재 스스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있어 주제를 정하고 토론하다 보면 생각 못한 다양한 의견들을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요즘은 미국의 유명한 곡물회사인 카길을 중심으로 농업 유통에 관해 토론하고 있는데 이런 시간을 갖게 되면 자연스레 지식도 넓히고 스스로 공부도 하게 돼 많은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농업기술원에서 받는 교육과정들도 정 대표에게는 환기구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정 실장은 “브랜드마케팅이란 과목의 ‘브랜드 네이밍’ 수업이 있는데 재미있어서 열심히 하는 중이다”며 “사실 이런 교육은 농사만 짓는 생활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말했다.
또 “열심히 교육을 받아 잘 활용해 현재 농장에 경쟁력 있는 이름을 짓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일을 하다가 가끔 아버지와 의견 충돌로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아버지의 의견을 밑바탕으로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아간다는 정 실장.
한 가지 분야에만 국한돼 일하는 것보다 다양한 일을 해보고 싶다는 그는 “지금 현재의 위치에서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면 뭐든 최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농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기르고 키운 벼가 쌀이 돼 손님들이 직접 먹고 나 또한 내가 기른 쌀을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며 웃는 그의 모습에서 햇살보다 빛나는 한국 농업의 희망이 보였다.

   

# 김포 금쌀 이야기

김포 쌀에 얽힌 옛 이야기가 있다.
‘김포 쌀이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쌀보다 더 무거워 용량 단위로 거래하던 옛날 쌀 상인들은 김포 쌀 구입을 꺼렸다’는 것이다. 쌀의 모양이 좋을 뿐 아니라 찰기와 단단함으로 속이 꽉 차 있다는 긍정의 표현이다. 외관상 찰기는 물론 소립이며 심복백이 없는 투명한 쌀로, 또 밥을 지을 때도 밥맛이 뛰어나 지금도 경기미 중 최상 그룹으로 분류되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쌀이 ‘김포 금쌀’이다.

김포 쌀은 한강을 주변으로 비옥하고 기름진 넓은 평야에서 생산돼 예부터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던 진상미로 5천 년의 전통을 자랑한다. 김포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매수수도 3년 심으면 차수수가 된다’는 말이 전해올 만큼 모든 곡식이 찰지며 맛이 좋아 대궐 수라상용으로 진상됐다.
김포 쌀이 금쌀로 불리게 된 것은 이유가 있다.
고구려시대 검포현에서 유래된 김포는 신라 제35대 경덕왕16년(757년)에 김포현으로 개명돼 지금에 이른다. 김(金)의 옛 발음은 ‘금’이며 백제 무왕(600~640)이 도읍한 곳을 금마(金馬:전북 익산)라 불리며 지명 자체가 왕도의 뜻을 담고 있고, 김포라는 지명은 ‘금포’라는 음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김포 금쌀’이라는 상표는 김포의 옛 명칭과 발음을 토대로 해 브랜드화한 것이다.

조선 중종 때인 1530년 홍언필 등이 편찬한 신중 동국여지승람의 한성부편에는 ‘한강에 임해 땅이 넓고 기름져 사람이 살기 좋은 곳’으로 김포를 지칭했다. 이때의 김포라면 지금의 영등포구와 양천구, 강서구는 물론 부평, 부천, 인천 서구를 포함한다. 지금은 많은 지역이 독립돼 나가면서 일부 면적에 국한돼 있지만 김포평야는 국내 손꼽는 곡창지대로 그 명성이 높다.
김포지역은 벼농사에 알맞은 자연조건, 즉 토양과 기후, 물 등 3박자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 평균기온은 물론 일교차가 벼농사에 알맞은 데다 풍부한 물과 기름진 토양을 지니고 있어 수도작에 있어 국내에서는 최적지로 손꼽힌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쌀을 생산해 내겠다는 농가들의 의지가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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