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노래, 노동요 등 옛날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우리의 노래들을 보면 하나같이 다 구슬프다. 그것은 바로 그 노래에 한이 맺혀 있기 때문이다. 그 한은 바로 가난한 삶의 애환인 것이다.”
현재 기성세대라면 누구나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반주 없이 구수한 노래 한 자락씩은 다 들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노래들은 다 가슴을 찡하게 하는 슬픈 노래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할 것이다.

  # 뱃노래, 노동요 가락이 슬픈 이유

뱃노래, 노동요 등 우리의 민요들이 왜 슬프고 가슴을 울리는지, ‘한국의 뱃노래’를 집대성한 김순제(88)교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뱃사람들은 정치망(자리그물=한 곳에 쳐 놓고 고기 떼가 지나가다가 걸리도록 한 그물)을 보기만 해도 고기를 얼마나 많이 잡혔는지를 잘 알지. 그리고 그 고기를 다시 포대기에 담는데 그때 부르는 노래를 ‘바디소리’, ‘테질소리’라고 하지”라고 말하면서 “이상하게 고기가 많을 때나 적을 때나 항상 똑같이 구슬픈 노래만 부르지, 왜 그런지 알아?”라고 질문했다.

그리고는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다 부자가 아니고 가난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지”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예부터 뱃일, 논일, 밭일 등을 하는 사람은 돈 많은 양반이 아니라 하인들이었기 때문에 고기나 추수를 많이 수확하나 적게 하나 다 자기들 것이 아니기에 기쁨과 슬픔을 느낄 필요가 없었지”라면서 “즉, 자신들의 소유물이 아니라서 항상 힘들고 고생하는 그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노래는 다 슬플 수밖에 없지”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우리의 가락에 대한 애환을 말해 준 김 교수는 요즘 우리의 가락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몹시 안타까워하고 있다.

강원도 삼척 어느 바닷가에서 이름없는 한 노인이 불러준 ‘노 젓는 소리’, 상여를 맨 젊은 청년들을 앞에서 종을 치면서 불렀던 상여꾼의 ‘상여소리’ 등등 우리의 민족들이 불렀던 진정한 우리의 가락이 그 뿌리를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제 우리 음악의 뿌리를 살리는 작업을 후대들이 해야 한다”면서 “비록 그 가락들이 현대인들에게는 재미없고 유행성이 없지만, 그런 노래가 있었다는 것만이라도 기록으로 남긴다면 아마 그것도 좋은 역사가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우리의 민요를 연구하는 데는 단지 음악만 해서는 절대 안 된다”면서 “우리의 음악을 연구하는 사람은 음악은 가장 우선시 돼야 함은 당연하고, 국문학과 사회학도 절대 등한시 해서는 음악을 연구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모든 학문은 변화를 가져온다”는 김 교수는 “음악도 다른 학문과 같이 변화를 거듭해야 하고, 결국 그 변화는 사회변화이기 때문에 우리의 음악도 민요연구는 물론 현대인들이 좋아하는 대중음악도 많은 연구를 해야 한다”라고 음악연구의 필요성을 주창했다.

우리 음악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김 교수는 그 음악연구 전에 연구 주체의 음악교육도 중요하다고 한다.

김 교수는 ‘음악을 가르친다’라는 표현보다 ‘음악을 느끼도록 한다’라는 표현으로 음악교육을 설명하고 있다.

“음악을 가르친다는 것은 박자가 어떻고, 하모니는 어떻고 하듯이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다”는 김 교수는 “음악이 좋다, 슬프다, 기쁘다 등 음악을 느낄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음악교육이다”라고 강조했다.

 # ‘섬 집 아기’와 ‘잘살아보세’에 담긴 음악 철학과 애정

이런 김 교수의 음악교육에 대한 철학과 애정 어린 마음을 잘 반영하듯 그 일화도 참 재미있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라고 부르는 ‘섬 집 아기’라는 노래가 초등학교 4학년 책에 등장할 당시 김 교수는 학생들에게 그 노래는 너무 슬프고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 교수는 당장 문교부에 찾아가 “꼭 이 노래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들어가 가르쳐야 되겠느냐?”면서 “지금 세상 살기도 어려운데 초등학생들에게 이 슬픈 노래를 부르게 해서 뭐가 그리 교육이 되겠느냐”고 노래를 교과서에서 뺄 것을 권유했다.

그래서 그 계기로 ‘섬 집 아기’는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얼마간 빠져 있었다고 한다.

또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우리가 익히 아는 ‘잘살아보세’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의 가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김 교수는 다시 문교부로 찾아간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이 노래 하지 마쇼”라고 또 제안했다.

그리고는 “이 노래 작곡을 각하가 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가사는 현재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 다르다”면서 “‘~우리도 한 번 잘살아보세’라는 표현은 세상에 한 번만 잘 살고 그만 둔다는 뜻인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얼마 후 편지를 통해 ‘노래는 부르지 않고 그냥 악기로만 연주하겠다’라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이렇게 음악에 대해 남다른 고집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김 교수는 음악교육에 대해 “음악이라는 것은 느끼는,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면서 “음악을 좋게 느끼게 해주고, 즐겁게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지 단순히 지식만 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라고 음악교육의 참뜻을 전했다.

김 교수는 “옛날부터 우리의 음악을 하는 사람은 서양음악을 하는 사람보다 멸시받고 외면당했다”면서 “이제는 사회가 변해 우리의 것을 찾는 사람들이 남다른 대접을 받고 있기 때문에 우리 음악을 교육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제 음악을 하는 사람, 즉 음악인들은 작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큰 포부를 갖고 우리 민족의 얼과 애환이 담겨 있는 우리의 음악을 중요시 생각하고 그 음악을 후손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누구의 입에서 먼저 불렀는지도 모르는 뱃노래, 노동요, 민요 등 우리의 음악은 우리 민족이 창조하고 계승 발전시켜온 문화유산 가운데 정서가 가장 잘 배어 있는 문화유산이다.

반만년 역사 속에 언제나 우리 민족과 애환을 같이해 온 우리의 음악, 그 음악을 김 교수의 후학들, 김 교수의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이제 보존과 계승의 의무를 짊어져야 한다고 본다.

    

※ 다음 편 소개=다음 13편에서는 김순제 교수 인생의 회고와 정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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