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26일
 
오늘은 고소 적응을 위해 에베레스트 뷰(3천880m)까지 갔다가 다시 남체로 돌아오기로 했다. 그런데 아

   
 
침에 일이 생겼다. 모 교수께서 고소 적응이 안 돼 등반을 포기하고 하산하기로 한 것이다. 이분은 알프스까지 다녀온 분이신데…. 그리고 나머지 두 분도 어제 저녁부터 식음을 전폐하고 계신다. 국내 산은 안 가본 데가 없다는데도….
아무튼 오늘은 우울한 출발이다.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에베레스트 뷰까지 왕복 2시간 거리라는데, 우리는 무려 6시간이나 결렸다. 70~80㎏의 짐을 지고, 슬리퍼 신고 다니는 원주민들과 감히 견줄 수 있으랴마는….
에베레스트 뷰에는 일본인들이 지은 진짜 호텔이 있었다. 하루에 150달러다. 방값이 너무 비싸다(일반 롯지의 10배 이상)는 느낌은 들었지만, 경치와 시설을 생각하면 아깝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곳 히말라야에도 세계 경제위기의 한파는 엄습하고 있었다. 롯지 주인의 설명에 따르면 우기를 제외하고 일 년에 대개 6개월간의 장사인데, 올해는 예년의 10%도 손님이 없단다. 아, 빨리 경기가 좋아져야 네팔의 원주민들도 웃음을 되찾을텐데….

# 4월 27일

오늘은 3천860m의 텡보체까지가 목표다. 하루에 420m의 고도를 높인다. 물론 평지가 아니고 3천440m~3천600m~3천200m~3천860m의 굴곡형이다.
고도가 올라갈수록 한발짝 움직일 때마다 숨이 찬다. 4천m가 넘어서면 100m 움직이는데 무려 1시간 이상씩 걸린다고 한다. 자기와의 싸움이다. 천천히 그리고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이 왕도라고 한다.
히말라야를 자주 찾는 유럽인들, 일본인들 가운데는 60대, 70대, 심지어 80대 노인들도 자주 볼 수 있다.

   
 
신체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처럼 히말라야를 찾는 데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절경이다.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다.
누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국내의 산행일 경우 우리가 자연을 찾아간다고 할 수 있지만 히말라야의 경우는 우리가 자연에 던져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자연 속의 한 점인 것이다. 그래서 히말라야 전 지역을 십여 차례나 트레킹하는 마니아들이 늘고 있는 것 같다.
텡보체의 저녁은 화기애애했다. 전 세계의 산악인들과 네팔 현지 셸파, 포터들이 어울려 같이 보내는 저녁 식사의 모습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제화의 모습이 아닌가라고 나의 눈에는 비춰졌다.

 

# 4월 28일

오늘의 목표는 페리체(4천280m)까지다. 아침에 일어나니 또 한 분의 교수께서 하산을 결정하셨다. 고소에 적응을 못하고 밤새 뒤척이다 더 이상의 산행은 무리라는 판단 하에 하산 결정을 한 것이다. 앞서 하산한 교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일단 하산을 결정하면 그 시점부터 발생하는 모든 경비(롯지비용, 포터비용, 식사대 등)는 개인 부담이다. 그리고 하루 정도 하산해 체력 회복을 하면 따라붙어서(본팀은 3일 산행, 1일 휴식의 스케줄) 같이 움직이게 된다. 그것도 되지 않으면 본팀들이 모두 하산할 때까지 밑에서 기다려야 하니 경비 지출도 만만찮은 것이다. 일종의 서바이벌 게임이다.

   
 

숙소를 출발해 페리체를 향해 걷는다. 멀리 아마다 블람과 로체, 에베레스트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걷고 있자면 흡사 꿈속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경치가 아름답다. 하지만 경치에 취해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면 그대로 수백m는 돼 보이는 계곡 아래로 굴러 떨어질 것 같아 조심스럽다.
어려운 길을 멋진 경치로 위안 삼으며, 모두 무사히 페리체에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원정대에서 이원록 대원이 기침 증상의 회복과 우리들을 맞이하기 위해 캠프2에서 하산했다. 대원들의 건강 상태와 정상 공격 일정 등 여러 가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옆 자리의 미국 트레킹 팀들을 이끌고 있는 경력 5년의 여성셸파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페리체에는 의료팀들이 항시 상주하면서 이곳 방문객들의 고산병 치료에 임하고 있다. 아울러 지금까지 히말라야에서 사라져 간 수많은 산사람들의 묘비가 있다. 최근 들어서는 한국인들의 이름도 심심찮게 눈에 띄고 있다. 과연 산이 무엇이길래….

 # 4월 29일

오늘은 페리체~투클라~노부제까지 가는 여정이다. 4천910m까지 오른다. 베이스 캠프까지 가는 길 중 가장 어려운 코스라 알려져 있다.
아침부터 교수 산악반 대장께서 고소에 대한 고통을 호소해 오셨다. 잠을 못 주무셨다. 하산을 하실려 하다가 참고 가 보기로 했다. 출발해 얼마 지나지 않아 부산 산악회 대원 2명의 묘비가 있었다. 2005년 9월 히말라야 푸모리(7천165m) 등정 후 하산하다 실종됐다. 푸모리는 에베레스트보다는 높이는 낮지만 빙벽, 암벽, 눈사태로 산악인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등정이 더 힘들다고 알려져 있는 곳이란다.

페리체에서 투클라로 가는 길은 말 그대로 평지다. 황량하고 넓은 개활초지가 펼쳐진다. 지금까지의 경치와는 전혀 다른 경치가 끝없이 펼쳐진다. 투클라에서 라면과 감자로 점심을 먹고 진짜 가파른(단숨에 300m를 올려야 하니 죽겠네!) 투클라 패스를 지났다. 투클라 패스에는 셸파들과 외국원정대의 무덤이 있었다. 다시 한 번 산이 무엇이길래를 되뇌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노부제에 도착했다. 노부제는 맑은 물이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개울가에 위치한 데다 남향으로 터 있어 아늑하고 빛도 잘 들어온다. 인천대학교 산악부를 이끌고 있는 김준우 교수가 노부제까지 내려왔다. 한 달 이상 수염도 못 깎아서인지 진짜 산사나이의 모습이 됐다. 본인도 중간 중간 고소증세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했다. 5천m를 코앞에 두니까 모두가 초죽음 상태로 변했다. 대장은 아침보다는 약간 상태가 좋다고 했다. 의외로 내가 아직은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고(왕성한 식욕, 소화 good. 대소변-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수분흡수 -2L 이상), 나머지는 모두가 상태가 별로다. 하룻밤 자고 나면 탈락자가 줄 설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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