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30일

오늘은 원래 계획에 따르면 고소 적응을 위해 하루 휴식이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대장도 컨디션이 좀 좋아진 것 같고, 다른 교수들도 자존심상 솔직한 자기 몸 상태를 이야기하지 않다 보니 늦게 출발해 고도를 고락셉까지 200m 올리는 것에 쉽게 동의해 버렸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남체에서 고소 적응을 위해 고생해서 올라온 440m를 다시 되돌린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작용했을 것이다. 즉, 고소 적응 훈련(원상 복귀)보다는 약간씩이라도 고도를 높여가는 것이 유리하다는 계산이었던 것이다. 역시 에베레스트를 모르는 아마추어들의 얄팍한 계산이었다.
본격적인 사건들은 이제부터 터지기 시작했다. 출발한 지 30분도 안 돼 한 교수님이 포기선언을 했다. 페리체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이제 3명 남았다. 절반이 탈락한 것이다. 그런데 나머지 한 명도 며칠째 식음을 전폐하고 약으로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주위에서 하산을 권유하지만 본인의 고집이 강해서…. 불안불안하다. 이러다 대형 사고라도 나면….
로부체에서 고락셉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길이 이어지다 고락셉에 거의 다 도착할 무렵에 창그리 빙하를 횡단하게 되는데, 엄청난 규모의 너덜지대를 이루고 있다. 돌더미 사이사이로 오르내림이 심해 무척이나 힘들었다.
파김치의 몸이 돼 마침내 5천147m 고지에 안착했다. 이제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올랐다는 칼라
   
 
파타르(5천545m)와 우리 대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EBS(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만이 남았다.
칼라파타르 정상은 일반 트레카가 에베레스트를 가장 가까이서 조망할 수 있는 봉우리이고, 솔로쿰부트레킹 루트상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곳이라서 조망은 좋지만 그 높이 또한 만만하지는 않다. 고락셉에서도 400m나 올라야하니 휴….
어찌됐던 고락셉이 롯지가 있는 히말라야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베이스 캠프에는 얼음 위에 텐트만이 존재할 뿐이다. 고락셉에서는 정상까지 올라온 트레커들과의 화기애애한 시간이 이어졌다. 우리 인천대 산악부 원정대들을 도우고 있는 셸파들도 휴일을 맞아 내려왔다.

 # 5월 1일

오늘은 베이스 캠프를 방문하는 날이다. 내가 왜 이 어려운 길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보여줄 날이다. 하지만 아침부터 상황이 좋지 않았다. 역시 어제 저녁 무렵 산악부 지도교수가 강제로 하산 명령을 했던 모 교수의 상태가 안 좋다. 본인이 갈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강제로 롯지 체류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특별히 포터를 2명 붙이고 상태가 안 좋으면 아래로 데리고 내려가라고 조치하고 우리는 베이스 캠프로 떠났다.
유주면 공격조 대장의 친구인 서강식 선생님도 고소 적응이 안 돼 고락셉에서 머물기로 했다. 그 대신 유 대장이 친구를 만나러 오후에 베이스 캠프에서 고락셉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베이스 캠프로 가는 길은 거대한 쿰부빙하 가장자리의 산허리를 오르내리는 길이다. 수시로 돌더미가 떨어지기도 하고, 작은 바람결에도 돌더미가 무너져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제법 큰 규모의 낙석도 보인다.
고락셉 입구에서 베이스 캠프를 내려다볼 땐 머지 않게 느껴졌는데, 실제 걸어보니 가도 가도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 느낌이다. 길을 안내하는 이원록 대원은 바로 코앞이라고 가르키는데, 그 바로 코앞이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농담하느냐고 이원록 대원에게 짜증까지 부리면서 거의 5분 간격으로 주저앉을 정도로 체력이 소진됐다.
이제는 천금을 준다 해도 걷기 힘든 상태에 와서야 베이스 캠프에 도착했다. 결국 6명의 교수들이 출발해 인천대학교 교수 산악반 대장과 등산 왕초보인 나만이 EBS(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에 안착한 것이다. 하늘에 감사할 따름이다. 운이 좋았을 뿐이다.
세계 각국의 원정팀들의 텐트를 확인하고 너무나 지쳐 바로 모 대원의 텐트에서 골아떨어졌다. 1시간 반 가까이 자고 나니까 주위가 시끄러워 일어났다. 인천대학교 산악부 원정대, OB, 교수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배낭에서 한 장의 티셔츠를 꺼냈다. 티셔츠를 입고 텐트 밖으로 나갔다. 모두가 환호했다. 왜냐하면 그 셔츠는 내 수업을 듣고 있는 학부생, 대학원생, 외국인 유학생 모두가 우리 인천대학교 산악부가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해 인천대학교 산악부의 이름을 세계 만방에 알려 달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한마디씩 담은 셔츠였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이 한 장의 셔츠가 산행 왕초보인 나에게 EBS(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까지 가게 했다고 확신한다. 우리 학생들 모두의 염원이 이룩된 날이라고 기록하고 싶다. 아울러 KBS 다큐 ‘산’과의 인터뷰도 무사히 마쳤다. 한마음교수트레킹팀과 동행했던 김창곤 대원은 정상 정복을 돕기 위해 베이스 캠프에 잔류했고, 아울러 박은숙 산악부 OB도 원래는 베이스 캠프에 며칠 잔류 예정이었지만 고소 적응이 안 돼 바로 하산하기로 했다.

   
 
사진 촬영이 끝나고 하산하기로 했다. 산악부 지도교수가 내가 너무 피곤해 보여서 안전을 위해 말을 준비했다고 한다. 나는 이제 괜찮다고 극구 사양했지만 이미 부른 것이니 타고 가라고 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욕먹겠지만 승리자에 대한 예우라 생각하고 타고 가기로 했다.
말 타기도 쉽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말 안장에 앉아서 앞뒤 안장을 꽉 붙들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올라갈 때는 앞 안장, 내려갈 때에는 뒷 안장을 꽉 잡아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쏠림현상 때문에 말에서 떨어져 바위 투성이 길에서 대형 사고(뇌진탕)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고락셉 도착 무렵 긴장이 풀어져 한 번 말에서 떨어졌다. 다행히 유도를 한 덕에 낙지를 잘 해 사고는 모면했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베이스 캠프에서의 사고로 후송이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헬리콥터로 이뤄지는 후송은 1인당 1만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1만 달러….
돌아오는 길, 수은빛 도는 빙하지대를 따라 끝없이 도열 중인 얼음덩어리들이 인상적이다. 석양빛에 에베레스트와 주변 거봉들의 정상부가 황금색으로 물들어가는 광경에 자연의 위대함에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고락셉에 도착하니 남아 있던 모 교수가 결국 2명의 포터와 함께 아래로 하산했다고 한다. 하산 전 베이스 캠프로의 도전을 위해 약간 시도해 보다가 헛깨비가 보일 정도로 상태가 악화돼 하산하게 됐다 한다. 원래는 내일 칼라파타르에 오전 등정 후 하산하기로 했는데, 교수들이 모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관계로 대장께서 사진 촬영 후 바로 하산하자고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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