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 쿰부 빙하, 땅인가? 얼음인가?

세 개의 거대한 산, 에베레스트(8천848m), 로체(8천516m), 눕체(7천861m) 등에서 시작해 보다 작은 산들과 빙하를 만나며 20㎞를 흘러내리고 있는 쿰부 빙하.
빙하의 깊이가 얼마인지는 헤아릴 수 없으나 표면은 돌과 흙으로 덮여 있다. 눈이 얼음이 되며 불순물을 밀어내 생긴 결과이리라.

   
 

모든 원정대가 이곳에 캠프를 설치하는데 에베레스트의 봄인 4·5월이 되면 베이스 캠프에서는 하루 동안에 일어난 온도의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낮이면 따뜻한 햇빛으로 베이스 캠프에 친 텐트 주변의 얼음이 녹아내리고 해가 지면 모든 것이 다시 얼게 돼 텐트를 치고 며칠 지나면 텐트가 섬처럼 빙하 위에 떠있는 형상이 된다.
베이스 캠프에서 원정 기간인 두 달 동안을 안전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한다. 텐트 주변이 햇빛의 영향을 직접 못 받게 흙이나 돌로 표면을 잘 덮어 빙하가 녹는 것을 방지하거나, 적당한 장소로 텐트를 옮기는 것이다.
나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해 한 번은 텐트를 옆으로 옮겼고, 다음에는 완전히 장소를 옮겨 텐트를 다시 쳤다. 텐트는 짐만 밖으로 빼놓고 전체를 한 번에 들어서 옮기므로 손쉬우나 바닥을 고르는 것은 얼음도 깎고 돌도 옮겨야 하므로 꽤 힘이 든다.
삽질 몇 번 하고 숨을 몰아서 쉬어야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텐트 밑에서 빙하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데 처음 몇 번은 사람을 놀라게 한 것이 언제부터인지 일상이 돼 버린다. 베이스 캠프에 처음 도착해 땅 위에 설치한 것으로 여겼던 임시 안식처가 실은 빙하 위에 설치돼 있어 움직이며 소리를 내는 것이다.
표면에 얇은 흙과 돌이 조금은 덮여 있을지라도 빙하는 얼음 그 자체다. 베이스 캠프에서 자면 피곤이 안 풀린다고 하니 누군가가 텐트 아래 수맥이 흘러 그렇단다.
캠프1에 오르면 상황은 달라진다. 아이스폴 지대 위에 위치한 캠프1은 눈사태를 피하기 위해 설원 가운데 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눈이나 눈 아래로 얼음이 있다. 단지 흙이나 돌이 아닌 눈이 겉을 덮고 있을 뿐이며, 곳곳에 있는 크레바스 속을 보면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곳은 텐트를 옮기는 수고가 필요없다. 한낮의 햇살이 아무리 강해도 단지 눈의 표면만을 녹일 뿐이며 고소적응이 되면 캠프1을 건너뛰어 베이스 캠프와 캠프2를 운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캠프1과 캠프2가 협곡에 위치하고 있어 텐트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는 이곳을 둘러싼 세 개의 거대한 산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 캠프1의 오른쪽에 위치한 눕체 암벽 중간(경사 70도)을 무엇인가가 오르내리고 있다. 자세히 보니 텐트 두 동이 바람에 날려 500m 이상의 설사면을 오르고 나서 중력과 바람의 힘의 평형으로 오르지도 내려오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다음 날 바람이 잦아들고 셰르파들이 텐트를 수거해 다시 설치한다. 바람에 견디기 위해서는 스노우바를 눈 속 깊이 박고 텐트와 끈으로 연결한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바람의 세기가 커지므로 스노우바의 수도 함께 늘어나는데 캠프3은 40도 이상의 설사면에 있어 눈을 깎아 설치하므로 더 불안하다.
원정 때 함께 한 박영석 대장이 이끈 에베레스트 남서벽 팀은 베이스 캠프부터 캠프2까지 텐트를 100m 이내에 설치했고, 그 위는 길이 대부분 암벽으로 이뤄져 있어 암벽에 고정하며 4개의 캠프를 설치하고 정상 등정에 임했다.
건물은 기초가 중요한데 에베레스트에서 설치하는 텐트 기초는 움직이기도 하고 녹기도 하고 경사까지 있으니 참 부실하다. 움직이는 얼음 위에서 잠을 자며 수고하는 것이 정상에 이르는 과정이기에 기꺼이 그곳에서 잠을 자는 것이다. 자는 곳이 어디냐에 상관없이 누우면 바로 깊은 잠에 빠져든다.
심지어 캠프4에서는 쪼그리고 앉아 몇 시간을 졸다가 정상으로 향하기도 한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서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모인 세계의 원정대로 인해 에베레스트 아래에 펼쳐진 쿰부 빙하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고소에서 등반을 하다보면 쉬 힘이 든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음식이 에너지원이 되기 위해서는 산소가 필요하다. 이것이 고소에서의 문제 중 하나다. 먹을 것을 먹으면 소화를 위해 산소 소모가 늘어 걷는 것이 더 힘들어지고 먹지 않으면 더 이상 걸을 수 없고… 해결책은 간단하다. 조금씩 자주 먹는 것이다.
이론상으로는 그렇지, 나도 그 사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한 번 손을 댄 음식은 쉬 그치지 못한다. 특히, 점심으로 먹은 폭탄(김밥 재료를 모두 합쳐서 주먹밥 형태로 만들고 김으로 싼 폭탄 모양의 행동식)은 아무리 크더라도 입안에서 한 번에 터져 버려 입에 대면 모두 먹게 마련이다.

   
 

그리고는 한두 시간 소화가 어느 정도 될 때까지 힘들게 걸으며 후회한다. 한두 시간 후 걷는 것이 편해질 때쯤 돼서야 ‘잘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씹을 수 있는 음식을 입에 대는 것은 행복한 고민이다. 정상에 이르는 그 길에서는 턱이 얼어 버리고 산소마스크로 인해 물과 액체에만 의존해 운행을 해야 한다. 정상에 오르려고 하는 자는 그게 더 행복한가?
한 달 넘는 원정 기간 동안 내가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몇 년을 나와 함께 동고동락했던 옆구리의 복부 지방 5㎏을 연소시켜 없애 버린 것이다. 178㎝의 키에 68㎏이 돼 버렸다. 몸무게가 조금 더 나가는 이들은 10~15㎏ 정도 줄어든다. 고소에서의 지방연소능력은 정말 탁월하다. 다이어트를 원하는 자, 높은 곳으로 올라감이 어떠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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