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득표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정치학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의 한국정치는 ‘대통령 수난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와 망명, 윤보선 대통령의 법정출두,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 최규하 대통령의 도중사퇴, 전두환ㆍ노태우 대통령의 투옥, 김영삼ㆍ김대중 대통령 자녀의 사법처리 등에 이어 작년 2월 퇴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대통령의 비극과 수난이 되풀이되고 있다.

프레드 그린스테인(Fred Greenstein)은 “대통령은 국민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글에서 ‘대통령은 국가의 상징, 자국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게 하는 애정의 출구, 인식의 도구, 대통령과 동일시하는 대리참여의 수단’이라고 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외국에 대해 국내 정치적으로, 국가 주요 행사에 의전적ㆍ의식적으로, 국민통합 차원에서, 국민의 상징이자 구심점이며, 그 시대 역사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왜 국가의 상징으로서 국민을 대표했던 대통령의 비극과 수난이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 대통령의 비극은 곧 국민의 불행으로 직결된다. 대통령의 실패는 그 결과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런 안타까운 비극이 되풀이되는 데는 분명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대통령중심제의 권력구조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많은 나라에서 우리와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는다. 권력구조를 내각책임제로 바꾼다고 대통령의 불행이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제왕적 대통령을 우려하지만 제왕적 총리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각책임제는 의회와 행정부의 일원적 관계는 물론 집권당이 동시에 장악하기 때문에 오히려 국가 권력의 독점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력에 대한 가장 초보적 수준에서 입법, 사법, 행정권력 간의 균형과 견제 기능의 마비를 원인으로 들기도 한다. 제왕적 대통령에 의한 집권여당과 국회 장악을 우려해 대권과 당권 분리, 국회의장의 당적 이탈과 자유경선, 주요 당직의 경선, 자유 투표, 상향식공천 등 다양한 제도를 도입했지만 집권당과 여당 의원들은 여전히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야당도 권력자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 의회에 의한 행정부나 대통령의 견제에 한계가 있다.

검찰에 의한 정치권력 사정기능의 한계를 탓하기도 한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기 위해서 검찰총장의 임기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에 약하고, 죽은 권력에는 강한 것이 사실이다. 검찰이 현직 대통령에게 사정의 칼을 빼들기를 기대하는 것은 전연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언론과 시민사회의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기능을 문제 삼기도 한다. 하지만 권력의 홍위병 역을 자임하는 사이비 언론과 어용 시민단체도 있으며, 비판적인 언론에 대하여 집권세력은 세무조사 등 공권력을 동원해 재갈을 물리기도 한다.

대통령의 절대 권력을 감시ㆍ견제ㆍ비판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다양한 제도들이 있지만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제도가 제 구실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 대통령 불행의 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제도가 당장 제대로 작동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솔직히 비관적이다.

대통령 불행의 근본적인 원인은 대통령 개인에게 귀착된다. 대통령 자신이 자초한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대통령의 리더십 행태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 자신이 불행의 씨앗을 정치권력의 사용화(私用化)와 인치(人治)를 통해 키웠기 때문이다. 사심을 버리지 못하고, 법과 원칙을 존중하지 않으며, 국민의 다수 의지와 이익에 봉사하는 대통령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임자들의 불행을 반면교사로 삼아 친인척 및 측근 관리는 물론 정치권력 행사를 절제해야 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면서 대통령의 비극과 국민의 불행이 이번이 마지막이 되길 간절하게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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