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지난 3월 2일부터 ‘한국의 뱃노래’를 총 집대성한 김 교수(88) 전 인천교육대학(현 경인교육대학교)교수의 모든 것을 직접 찾아가 들어보았다.

김 교수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현장연구를 해야 한다”라고 침이 마르도록 조언하고 있다. 그리고 항상 속단하지 말고 겸손하게 정확하게 알고 연구를 하고 그것을 우리 후대에게 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관절염이 와 거동이 다소 불편함에도 우리 전통음악에 대한 교육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는 김 교수.
처음 ‘김 교수는 누구인가?’로 시작해 평소 김 교수를 존경하며 본보 국악교육칼럼에 글을 연재하고 있는 박학범 인천문학초등학교 교감 집필 등으로 이어진 특집시리즈를 마감할 즈음 김정배 본보 편집국장이 김 교수를 만나 김 교수의 면모와 숨겨진 이야기 등을 들어보았다. <편집지 주>

“모르고 저지른 바보는 그것으로 끝나지만,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는 이 바보는 세 번(명예, 생명, 재산) 죽어 마땅하다.”

   
 

이 말은 처음 양악(洋樂)으로 음악을 시작했지만, 우리의 뿌리를 알아야겠다는 신념으로 지난 1972년부터 그 무거운 롤테이프 녹음기를 어깨에 짊어지고 우리나라의 바다라는 바다는 물론, 육지 구석구석 모두 다니면서 한국의 뱃노래, 일노래, 구전동요 등을 녹음 채보한 김 교수가 항상 나라와 후배 음악가들을 생각하면서 입이 닳도록 되새기는 말이다.
-김정배=개인적으로 그 동안 교수님 특집을 데스킹하면서 우리나라 전통음악의 새로운 사실과 역사, 교육적 가치, 사라지는 전통음악의 안타까운 현실, 왜곡된 우리 음악 등 많은 부분에서 저뿐만 아니라 기사를 읽은 모든 사람들이 아쉬움과 자부심을 동시에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요즘 서양음악과 국악과의 발전속도는 어떠하다고 봅니까?
▶김 교수=문화라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변하는 것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한편으로 걱정스러운 것은 서양음악처럼 우리 전통음악이 변하는 것은 좀 우려를 해야 하겠죠.
나이 먹은 사람들은 ‘저게 무슨 노래지’하면서 들으려고 하면 슬그머니 없어지는 것이 서양음악인데 우리의 전통음악도 이 서양음악을 따라가려는 것 같아 좀 아쉽고, 앞으로는 항상 새로운 것이 나오고 또 변화하면서 음악은 진행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올바르게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정배=우리의 전통음악을 알리는 방법은 신문도 중요하지만, 방송이 더 홍보효과가 크다고 보는데 과거와는 달리 공·민영 지상파 방송조차도 소홀히 하는 경향입니다.
▶김 교수=요즘은 우리의 것을 모를 뿐 아니라 더 큰 문제는 남의 것을 우리의 것으로 알고, 부르고, 공부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제가 20년 전 태국을 갔는데 그곳의 한 초등학교장의 안내로 교사(校舍)를 구경하는 중 음악실이라는 곳에 들어가 보고는 깜짝 놀랐어요. 그곳에는 ‘음악실’과 ‘양악실’이 따로 분류돼 있었어요. 바로 음악실은 태국의 전통음악을 하는 곳, 양악실은 피아노와 오르간, 바이올린 등 서양음악을 하는 곳 등으로 분류해 놓은 것이죠. 그만큼 전통음악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깊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즐겨 불렀던 ‘새노야’라는 노래, 우리 노래 아니에요. 일본 삿뽀로 밑에 있는 한 항구 어부들이 동해안으로 왕창 들어와 ‘엥여나 사노야, 엥여나 사노야’하고 불여진 노래가 ‘새노야’가 된 거죠.
-김정배=그 말은 국악이라는 표현보다 ‘음악’이라고 하면 바로 우리의 음악이고, 서양에서 들어온 것은 ‘서양음악’이나 ‘양악’으로 표현한다는 것이죠.
▶김 교수=그러고 보면 지금 우리가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죠. 그냥 올바로 돼 있는 것을 속으로 지키면서 내놓지 않고, 왜곡되는 것을 막고 보존하는 그런 장점도 나름 있다고 봅니다.
-김정배=요즘 전통음악의 현실을 볼 때 상당히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보는데 선배음악학자로 후배들을 봤을 때 아쉬운 점이나 바라는 점이 있는지요.
▶김 교수=가끔 후배들을 불러 요즘 현장에 나가서 채록도 하고 현장연구를 하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대답을 하지요. 그것은 당연한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연구실 밖에 나가 논이나 밭 등 현장을 다니다 보면 일을 하는 사람이 없어 일노래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예전에는 소를 몰고 밭을 갈면서 부르는 그 구수하고 멋있는 노래가 농기계 소리에 묻혀 버린거죠. 이것이 바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없어지는 것이기에 가슴이 아픕니다.
-김정배=이는 지금 교수님이 채록하고 연구한 자료들의 가치가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 아닌가요.
▶김 교수=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면 정말 무식했던 같아요. 그 동안 모은 좋은 자료들을 다 까먹었거든. 처음에는 녹음기를 구하지 못했어요. 가사는 글로 적으면 되지만, 가락은 듣고 금방 악보로 옮기지 못하죠. 그러니까 계속 불러달라고 하기도 뭐하고, 그래서 음악적인 면은 참 모으기가 어려웠죠.
-김정배=그러면 지금 교수님이 모으고 채록하신 뱃노래 외에는 더 없다고 할 수 있겠네요.
▶김 교수=아마 거의 없을 걸요. 그리고 제가 그 동안 교대에 있었잖아요. 만약 일반대학에서 내가 우리 전통음악을 연구했었다면 하는 욕심도 가끔 가져보기도 해요.
-김정배=아!~~그것은 참 중요한 말씀인 것 같네요. 교대 학생들은 교사가 되는 길을 위한 학업이 대부분이지만, 일반음악대학이나 예술대학에서는 나름 연구를 위한 공부를 하기 때문에 후계자도 생기도 그 업적들이 연구로 보존될 수 있기 때문이다는 말씀이시죠.
물론 국악원도 있지만, 일반 경연대회가 있을 때 보면 시골에서 아무도 몰랐던 국악천재가 나오는 것을 보면 아직도 우리의 음악을 공부를 하는 이가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 교수=똑똑한 후계자를 찾으려고 일반대학으로 강의를 나가봤지요. 몇 번 해보더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실용성이 없다고 도망가더라구요. 허허허!
-김정배=돈이 안 되니까요(웃음). 그렇죠, 젊은 사람들의 생각에는 양악을 하면 하다 못해 발표로 돈이라도 들어오지만, 국악은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거든요. 그렇다면, 지금 교수님이 발표하고 연구한 자료들은 외부에 어느 정도 알려졌는데, 그 업적들을 후대들에게 학문적인 자료로 영구히 남기고자 하는 캠페인을 우리 신문사에서 벌이고자 하는데요.
▶김 교수=그래요. 감사한 말씀이네요. 근데 중앙에서 벌써 다했고, 어떤 기관에서도 지금 수집하고 있어요. 그래서 나도 자료들을 정리 중이에요. 그런데 50년이 지난 지금 많은 부분이 소실돼 가슴이 아파요. 현재 육지노래는 거의 다 모아졌고, 모 방송국에서 ‘대사전’이라고 CD가 나왔는데 거기에 내가 좀 도왔어요.
-김정배=그러면 지금 교수님이 정리하고 계시는 자료들의 양은 어느 정도 되는지요.
▶김 교수=CD 한 판에 60분이라면 한 10판 정도 나오겠네요. 지난 1972년부터 녹음했고, 6년 정도 중점적으로 녹음 채록했으니 빨리 정리될 같아요.
-김정배=이제 교수님께서 선배음악학자로서, 우리 전통음악이 가야 할 길은 무엇인지 짚어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김 교수=지금이라도 현장연구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 현장이 안 되면 그 뿌리라도 찾아야 합니다. 잘 찾아보면 아직도 내 나이인 80~90세를 먹은 사람들이 살아있거든요. 아직도 늦지 않았어요. 좀 더 성실하고 노력해야 해요. 그리고 선배들의 연구자료 즉, 선행연구물을 많이 이용해 연구를 하기 바랍니다. 그래야 변화와 진정한 우리의 것을 알 수 있는거죠.
다음으로, 절대 섣불리 속단하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제가 처음 발표한 ‘서해안 시선뱃노래’가 ‘한강시선뱃노래’로 알려졌다 다시 수정된 것처럼 속단하지 말고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이것은 자기만 모르면 되는 것이 아니라 후대에까지 영향을 마치기 때문이죠.
-김정배=이제 후학들도 교수님 못지않은 진짜 ‘청출어람’이 될 만한 인물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김 교수=지자체, 정부 등을 상대로 우리나라의 각 도는 충청북도를 빼고 모든 시·도가 바다와 맞닿아 있죠. 바다와 육지로 나눠 학교, 단체 등을 이용해 우리 전통노래라고 생각하는 것을 모두 녹음해 보고하도록 해 학자들로 하여금 연구, 분석하도록 하는 작업을 강력하게 요구할 참이에요.
-김정배=교과부, 행정자치부 등을 통해 작업을 의뢰할 수 있는 부분이죠. 크게 돈 드는 것도 아니고요.
▶김 교수=앞으로 50년 안에 뱃노래, 일노래 등은 아무래도 다 없어질 것이에요. 일이 없어지는데 노래가 남아 있을 리는 만무하잖아요.
그래서 이런 작업들을 실시해 모든 전통노래 등을 문화재로 지정하라고 강도 높게 요구할 생각이에요.
-김정배=교수님의 말씀 충분히 동감하고 이해하겠습니다. 그러면 작업하고 있는 일이 끝나고 나면 그 다음에 남아있는 자료나 유물 등을 후대에게 교육적 가치로 이용될 수 있도록 하는 작업 즉, 인천시나 인천시교육청에 교수님만의 작은 공간을 마련해 줄 수 있는지 알아 보고자 합니다. 이는 실례의 말이지만 혹 교수님께 작고하고 나면 그 자료들이 소멸되는 것을 막기 위한 한 방법이기도 하다는 판단에섭니다. 그리고 우리 음악을 중요시하고 자부심을 갖는 음악인들의 공통된 여망이기도 하죠.
▶김 교수=그래요. 서울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살아있는데도 그들의 공간이 마련돼 있어요. 아마 그렇게 되면 인천에서는 내가 처음이 될 것 같네요.
-김정배=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뜻하는 바가 이뤄지게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성사 진척사항을 수시로 교수님께 알려 드리겠습니다. 아무쪼록 오랫동안 우리나라 전통음악의 맥을 계속 이어주시고 교수님께서 바라시는 모든 일이 빨리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연로하신데도 불구하고 장시간 대담에 흔쾌히 응해 주신 데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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