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신규 국민건강보험공단 인천남부지사장

     올해는 전 국민 건강보험이 시행된 지 2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1977년 7월 500인 이상 근로자가 근무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작된 건강보험은 1989년 7월 전 국민이 보험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제도를 도입한 지 불과 12년 만의 성과로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렵다. 독일은 127년, 벨기에는 118년, 일본도 36년에 걸쳐 전 국민 의료보장이 완성됐다. 우리나라의 전 국민 건강보험은 이제 막 청년기에 접어 들어 유구한 전통을 가진 독일, 영국 등 유럽의 사회보장 선진국에 비교하면 부족한 점이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가에 따르면 아직까지 낮은 보험료 부담으로 보험급여의 보장범위가 매우 낮다고 한다. 그래서 환자가 의료이용을 할 때 자기 부담이 너무 많아 저소득층의 의료이용이 충분치 못해 형평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있다. 또한, 단일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민의 건강증진을 위한 보험자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서구로부터 받아들인 많은 경제, 사회제도가 압축성장을 이룬 것과 마찬가지로 건강보험제도도 그 동안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면서 획기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몇 가지 제기되는 단점에도 건강보험제도의 도입으로 이룬 성과는 두 손으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생각건대, 우리나라의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보다 건강보험제도는 그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진화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가장 획기적인 것 중 하나는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가 아픈 국민에게 의료기관 문턱을 낮춰 의료이용의 접근성을 세계 최고 수준까지 끌어올렸다는 점이고 현재는 오히려 의료남용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까지 이르게 됐다는 사실이다. 2008년 우리 국민은 평균 한 달에 1회 이상 의사의 진료를 받고 있다. 의료시설의 공급도 건강보험제도로 인한 의료수요 팽창에 발맞춰 양적, 질적으로 크게 향상됐다.
이 같은 결과는 국가 보건의료수준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영아사망률의 대폭적인 하락과 평균수명 연장의 눈부신 성과로 이어져 이제 머지않아 세계 최장수국가로 분류될 날이 기대될 정도다. 그 밖에도 몇 해 전 국민건강보험공단을 방문했던 미국의 질병통제센터(CDC) 책임자도 크게 부러워했던 국가 건강검진제도,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치매나 중풍으로 고통받는 노인과 가족들의 고통을 사회가 공동부담하기 위해 첫발을 내디딘 공적 노인서비스제도인 장기요양보험제도, 사회보장의 효율적 운영기반이 될 국민건강보험공단 중심의 사회보험료 징수통합 계획은 사회보장 선진국에도 자랑할 만한 것들이다.

그러나 건강보험이 맞이할 미래는 순탄치 않을 것이다. 건강보험을 둘러싼 환경변화는 다양하고도 급속하다. 현재 논의 중인 영리 의료법인 허용, 민간보험 활성화로 대변되는 의료선진화로 포장된 의료산업화 논리가 건강보험제도 존립의 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또한, 사회적 돌봄과 의료비 지출이 많을 수밖에 없는 노인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공보험의 보편적 서비스에 만족하지 않고 고급 의료서비스 혜택을 바라는 국민 욕구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는 향후 보건의료비용의 급팽창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미 국민의 삶의 질 향상, 건강한 삶의 문제는 개인 문제나 보건의료분야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인 문제로 변화되고 있다.

따라서 건강보험제도를 바라보는 새로운 접근방식과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바로 지속가능한 건강보험제도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제 막 청년으로 자라난 건강보험제도는 지난 기간 제도운영상의 미비점을 보완함은 물론 구조적인 개혁을 필요로 한다.
취약한 공공보건의료 확대, 건강보험 보장성의 강화, 의료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저소득,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적인 지원 확대, 건강검진·증진사업의 내실화와 획기적인 발전,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정보기술의 적극적인 도입과 활용으로 국민에게 올바른 의료 및 건강정보를 제공해 소비자주권을 강화하는 방안 등 많은 과제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의 보건의료비용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할 것이며 이것은 우리 후세들에게 무거운 짐으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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