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상에서 지질학적으로 안정된 곳
 
세계에서 가장 크기가 작은 다육식물(10㎜ 이하)과 가장 큰 다육식물(바오밥)이 모두 남아공에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노던 케이프주(州)의 ‘별을 관찰하는 도시’ 서더랜드(Sutherland)는 지구상에서 가장 지질학적으로 안정된 곳이다. 이곳에는 6천600만 년 된 화산이 있는데, 아직까지 공식적으로는 사화산으로 발표된 바가 없다.

   
 

벤다에 있는 푼두지 호수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내륙에서 산사태로 생겨난 민물 호수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과학지 ‘네이쳐’는 지구의 모든 자기장과는 반대로 향하는 거대한 자기권역이 남아공 지하에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과학자들은 이를 두고 몇 백만 년 만에 한 번씩 일어나는 남극과 북극의 자리 바꿈이 시작되고 있음을 예시하는 현상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남아공 인들은 타고난 발명가다. 세계 최초로 가장 큰 규모이자 가장 실용적인 석탄에서 석유를 추출해 내는 석탄액화공장을 건설했다(남아공 석유소비량의 40%). 콩코드기 좌석을 남아공에서 만들었으며, 영국 전투기의 비행제어 기술을 남아공이 설계하고 개발했다. 서인도 제도의 크리켓팀 대표팀 주장 칼 후퍼가 남아공산 크리켓 배트를 선호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2002년 프리토리아 외곽에 위치한 BMW 로슬린 공장이 세계적인 미국 마케팅 정보기업 JD 파워스 앤 어소시어츠가 수여하는 ‘유럽 생산품질 우수상’을 수상함으로써 남아공 자동차 공장의 생산품질이 다른 유럽 국가보다 월등히 뛰어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남아공은 현재 규모면에서 EU의 15위 교역국이며, 이는 2년 전 19위에서 4계단 뛰어오른 성적이다.

 # 세계 3위인 수돗물 수질

   
 
세계에서 음용이 가능한 깨끗한 수질의 수돗물을 공급하는 국가는 12개국에 불과하며, 남아공도 여기에 포함된다. 남아공 수돗물의 수질은 세계 3위로서 세계에서 가장 앞선 수자원 관리법안을 시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큰 성과를 보고 있어 타국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른바 ‘청색혁명(Blue Revolution)’이 시작된 1998년 이후 빈곤층 400만 명이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남아공은 국제회의 개최국 중 선호도가 21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남아공이 개최한 ‘2002년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세계 정상회담’과 ‘2003년 세계 공원회의’가 큰 역할을 했다. 남아공은 세계에서 가장 심오한 애타주의 철학 사상, 우분투와 간디의 ‘사티아그라하(Satyagraha)’의 발상지다. 간디는 남아공에 살던 당시 무저항주의를 뜻하는 ‘사티아그라하’ 사상을 전개했다. 우분투는 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서로 연결돼 있음을 강조하며,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다”라는 표현처럼 서로가 있기에 인간일 수 있다고 믿는다.

 # 극과 극의 두 나라로 살고 있는 미지의 세계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최남단 끝, 이곳에 아프리카는 정말 없었다. 아프리카인 남아공에는 분명한 두 개의 나라가 공존한 본질의 색채를 잃어버린 백과 흑만이 있을 뿐, 늘 미지 속에 남아 있던 남아공, 남아공 케이프타운에 첫발을 들여놓은 느낌은 예상치 못한 상상의 배반이었다. 세계 7대 유명 관광지라는 명성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케이프타운, 잘 가꿔진 도로와 주거환경과 최고의 교육과 의료시설, 관광문화 등 어느 유럽 도시에 뒤지지 않게 깨끗하고 잘 정돈돼 있다. 300년 전 유럽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해 그들만의 터전을 마련한 남아공은 4천800만 인구 중 14%의 백인들이 오직 그들만의 세계를 건설해 경제, 문화, 사회, 교육의 90% 이상을 장악해 왔으나 분명, 지금도 변함없는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인 흑인들에겐 비극의 땅이며, 검은 대륙일 뿐이다.

   
 

흑인과 백인이 분명한 색깔만큼이나 극과 극의 두 나라로 살고 있는 아프리카이면서 아프리카가 없는 미지의 세계인 것이다. 누구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덴마크 출신의 여류작가 아이작 디너센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 그 광활한 대자연의 풍경과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잊을 수 없게 하는 영화, 우리는 그 영화 한 편으로도 이곳에 대한 동경과 상상의 세계를 이미 그려 놓았으리라. 아프리카하면 부시맨이 살고 있고, 텔레비전 속 동물의 왕국이나 정글 속 트래킹이 우선 떠올려지는 곳이 아니었던가. 문명과 동떨어져 야생동물과 더불어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갈 곳이라는 인식이 깊이 각인돼 있었기에 혼란의 폭은 클 수밖에 없다. 흑인지역은 아프리카이면서도 본질을 상실한 도회 속에 버려진 아프리칸스의 처절한 삶의 현장이었다. 판자와 양철로 얽혀진 한 평이나 될 듯한 공간에서 어떻게 6~7명의 식구가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아심과 인간의 생명줄이 이처럼 모질구나 하는 현장을 봤기 때문이다. 그들도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그들의 영토를 버리고 문물의 유혹을 따라 도시로 몰려든 슬픈 군상들이다. 남아공의 영국계 백인들은 비즈니스로, 네덜란드계 백인은 농장을 경영하며 상류층을 형성하고, 흑인들은 가정부, 막노동, 가드너 등의 하류층을 형성하며 노동으로 매우 힘들게 살아가고 있으나 흑인정부 이후에 많은 흑인들이 상류층에 합류하고 있다. 300년 만에 백인통치에서 흑인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들은 개벽이라고 믿었고, 가난과 멸시에서 벗어난 평등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 흑인 집권 후에도 큰 소요 한 번 없어

“더 이상 굶주리지 말고 도시로 나와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찾자”고 외쳐대던 흑인 리더들의 희망이 얼마나 허구였는지는 오래지 않아 지금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 많은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살아온 세월이었지만 흑인집권 후 큰 소요 한 번 없었던 것은 워낙 큰 빈부 차이와 교육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 문화, 사회경제가 안정돼 있는 이유도 백인사회에 이미 속박된 탓이었을 것이다. 어느 종족이고 나름대로의 근성과 바뀔 수 없는 인종적 습성이 있다고 한다. 오랜 기간 핍박받으며 호구지책을 목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본질은 예외일 수 없었다. 우리의 겸손이나 예절을 그들은 자기들의 우월감으로 받아들이고 있거나 받는 것을 당연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내가 10여 년을 이곳 남아공에 살면서 느낀 그들의 오랜 식민지 생활에서 얻은 관습이란 것을 알 수 있다. 해가 서쪽에서 뜨고 동쪽으로 지는,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인 케이프타운은 대서양을 향해 남쪽 방향으로 구부러진 좁은 반도 위에 위치한 남아공의 입법도시 케이프타운은 케이프반도의 동쪽과 서쪽 해변은 척추와 같이 자리잡은 산들로 구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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