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제훈 객원논설위원/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

 지난해부터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제2차 세계대전 이래 미국 경제가 누려온 독점적 위치가 흔들리고 있다. 급기야는 달러화의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마저 흔들리면서 중국이나 프랑스 등이 달러 대신 IMF의 SDR(특별인출권)을 대체통화로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최근 재정적자가 1조 달러가 넘어서는 등 달러화 가치가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 그 배경의 하나다. 반면 중국의 외환보유고가 사상 처음으로 2조 달러를 넘어서면서 미국 경제나 세계 경제에 대한 중국의 발언권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으며 급기야는 중국이 곧 미국을 제치고 초강대국의 지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마틴 자크(Martin Jacques)가 쓴 ‘중국이 세계를 지배할 때’다. 여기서 저자는 그간의 중국 위협론이나 기회론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서방 중심의 세계화와 경제통합을 통해 중국이 결국은 정치적으로 서방식으로 민주화 될 것이라는 주장은 망상이라고 지적한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중국이 서방화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중국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미국 주도의 자유화와 사유화 등의 시장주의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처방을 통해 개도국이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는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 대신 이제는 국가주도의 점진적이고 각국 실정에 맞는 경제처방을 주장하는 소위 ‘베이징 컨센서스’가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전직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자크의 주장은 사실 서방의 그간의 경제적 번영은 민주주의나 법의 지배 때문이라기보다는 역사의 우연에 불과했으며 오히려 식민지배에 기인한 바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 후 식민지의 독립으로 중국이 서방을 따라잡을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그간 조화를 강조하는 유교 사상 때문에 해외 정벌보다는 내부의 질서와 사회적 형평을 중요시 했다고 한다. 따라서 중국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하더라도 과거 독일이나 일본처럼 다른 나라를 침략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중국은 이미 자기들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자크가 이야기하는 대로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더라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고 전쟁이나 갈등 없이 조화로운 사회나 세계 질서를 구축한다면 누가 그것을 걱정하고 거부하겠는가? 문제는 지난해의 티베트 사태나 최근의 신장 위구르 사태에서 보여주었듯이 중국정부는 소수민족이지만 자기 국민에 대한 유혈 진압도 마다하지 않는 폭력적인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기 국민들에게도 폭력 행사를 마다않는 정부가 다른 나라 국민에게는 어떤 짓을 마다않을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우리에게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웃이며 북한을 두고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다. 최근 북한의 김정일의 건강이상설이 나오면서 북한이 핵무장을 본격화하면서 동북아의 긴장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으로서는 지금까지 북한을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로 생각해 김정일 정권에 대한 지지를 지속해 왔다. 그러나 북한이 계속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중국이 김정일 정권과 비핵화 중의 택일을 강요받는 사태가 곧 올 것이다. 중국과 미국과의 관계가 순조롭지 않을 경우 북한의 비상사태 시 중국이 일방적 행위로 나올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 우리로서는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중국이 과연 21세기를 지배할 것인가의 문제는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는 남의 일이 아니다. 당장 남북통일 문제와 연결되며 우리에게는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나라로서 우리의 사활과 생존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로렌스 브람(Laurence Brahm)은 그의 최근 저서 ‘The Anti-Globalization Breakfast Club’에서 소위 ‘히말라야 컨세서스’를 주창했다. 여기서는 빈곤퇴치, 소득격차해소, 개혁보다는 진화, 문화와 종교, 인종 차이 등에 기초한 자기 정체성이 강조된다. 기존의 워싱턴 컨센서스나 베이징 컨센서스 대신에 히말라야를 중심으로 형성된 불교, 힌두교, 이슬람, 도교 등의 공통된 정신적 유산을 오늘날에 되살려 평화로운 혁명을 이룩하자는 21세기 진정한 세계화 선언인 셈이다. 한 번쯤은 마음에 두고 생각해 볼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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