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진삼 객원논설위원/건축비평가·광운대 겸임교수

 인천세계도시축전이 개막 후 1주일이 다 돼 간다. 성급한 지역언론을 중심으로 초반 흥행대박의 예찬이 줄을 잇고 있다.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섣부르게 축배를 들기엔 11주나 남은 기나긴 행사여정이 고단해 보인다. 행사를 준비해온 주최 측은 기왕에 벌린 일, 끝까지 최선을 다할 일이다. 모름지기 세상의 축제들이 흥을 잃는 것은 한순간이기 때문이다. 축전의 초반에 여러 문제점들을 최대한 걸러내 축전의 콘텐츠보다도 더욱 알찬 대민서비스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축전 개막을 앞두고, 안상수 시장은 세계도시축전의 정례 행사를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보도됐다. 동시에 시는 인천발전연구원을 통해 베니스비엔날레를 모방한 각국관의 인천 유치에 따른 사업성 판단을 용역 의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두고 굳이 안 시장의 정치적 야망을 위한 제스처라고 비난할 생각은 없다. 이미 그러한 정황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테니까.
불확실한 성격의 비엔날레(격년으로 치러지는 행사)의 설정도 그렇지만 베니스가 100년에 걸쳐 이룩한 성과를 단기간 내에 흉내내려는 각국관 유치 의도는 참으로 유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송도국제도시에 들어서는 신개념의 오피스빌딩과 공공건축의 현란한 출현을 마주하면 더욱 그렇다. 그것들은 저마다 매력적인 공적 공간을 지니고 있다. 송도컨벤시아, 인천도시계획관, 투모로우시티, 포스코 본사, 송도산업기술문화 콤플렉스, 인천대 캠퍼스, 인천가톨릭대 조형예술대학, 송도국제도시 내 3개 신축호텔과 6개 지하철역사 등은 이미 일정 규모 이상의 전시 등 행사를 지원할 수 있는 공적 공간(Public Space)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 일본 후쿠오카시에서 개최하고 있던 아시안 먼스(Asian Month)에 당시 서울에서 활약하던 아티스트들을 규합해 행사에 참여하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나는 공간지 편집장으로서 재즈무용단, 전통한복디자이너, 설치미술가와 퍼포먼스, 한국의 마임이스트, 건축설계집단 등으로 구성된 팀의 한국 측 코디네이터의 역할을 수행했는데 그 때 받았던 신선한 느낌은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후쿠오카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각 기업의 오피스빌딩 1층 공간은 통상의 공적 공간으로 조직돼 있었는데 대체로 2~3개 층 높이의 천정고를 지닌 공허부와 일반에 개방된 공간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바로 그 공간을 중심무대로 후쿠오카시에서 활동 중이던 젊은 기획자(프로듀서)들이 행사용역을 맡아 철저하게 관리, 운영하고 있었다. 각각의 빌딩 내 공적공간에서는 전시와 공연 등의 독특한 프로그램들로 꽉 차 있었고, 시민들은 행사안내 리플릿 한 장을 손에 쥔 채 아주 자연스런 동선 안에서 선택적으로 행사를 만끽하고 있었다. 좋은 공간 안에 멋진 행사가 올려지고 자유의지로 향유하는 시민들의 모습, 그 배면에 지역 내 기업의 후원 하에 젊고 패기만만한 기획자들의 구상과 그들이 국내외를 동분서주하면서 찾아낸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종국엔 아주 세련된 완성품으로 시민사회에 아트의 세계를 제공하던 동세대 그들이 있었다. 그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때 그 느낌을 저변에 깔고 인천세계도시축전을 바라보면 한참이나 뒤쳐진 도시문화의 수준에 고개를 설레설레 젓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행사장의 관람객 동원용 입장권 강매로 어수선했던 개막 전 지역 내 분위기도 그렇지만 80일간 매일같이 터뜨리게 될 불꽃놀이의 화려한 폐장 쇼를 감상하면서 폭죽과 함께 사라지는 시민의 혈세를 생각하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루 10만 관람객을 위해 매일 매일을 전쟁처럼 치러야 하는 행사개념이라서 그랬겠지만 그로 인해 준비된 행사의 질이 고르지 못하고, 또한 일회적으로 소비되는 가설공간의 의미 또한 착잡하긴 마찬가지다. 그뿐인가? 행사의 목적이 관람객 동원과 그것의 수입에 의존하는 실적위주로 편성돼 있다 보니 행사장 안팎을 구분하는 펜스를 두르고, 그 안에서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야 했던 까닭에 행사장을 찾은 관람객들의 원성을 사는 것은 예정돼 있던 수순이었다.

만일에 인천시가 향후에도 이와 유사한 행사를 기획하고자 한다면 일회성 행사를 위한 임시가설건물이나 베니스 비엔날레 각국관과 같은 전시 용도를 위한 건물의 건립이 아닌 기존에 있는 건물의 공적 공간을 네트워크화한 공간의 활용을 전제로 기획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오래전 후쿠오카시가 이미 개발하고 제안한 바 있듯 도시 내 공간의 문화적 활용방안을 전제로 하는 기획 프로그램을 운용할 때라야 만이 대대적인 비용의 절감은 물론 시민의 주머니를 담보로 한 소모성의 행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인천시는 번지르르한 도시의 껍데기와 행사프로그램의 규모만 쳐다보지 말고 도시 내 공간의 활용을 지혜롭게 사고하는 저들의 기지를 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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