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득표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정치학

 이명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국민통합을 위한 3대 정치개혁방안으로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 선거횟수 감축, 행정구역 개편 등을 제시했다. 현재 구체적인 안이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섣불리 의견을 내기는 어렵지만 원론적인 입장에서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한국정치개혁을 논의할 때는 언제나 제도를 탓해 왔다. 한국정치가 이 모양 이 꼴로 국가발전의 발목을 잡는 근본적인 문제가 마치 법과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법과 제도를 운영하는 정치지도자들의 의식과 행태에 문제의 본질이 있음을 전연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다. 한국정치는 궁극적으로 제도보다는 정치문화에서 문제를 찾아야 할 것이다. 제도를 고친다고 한국정치가 하루아침에 선진화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낙관론이다.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은 절체절명의 명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역주의도 선거제도를 바꾸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발상이다. 예컨대 정당명부제, 권역별비례대표제, 석패율(惜敗率) 제도 등을 도입해 특정 정당이 영호남에서 몇 석의 의석을 건졌다고 지역감정이 해소되고 국민통합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방식은 300여 종 이상이 된다고 한다. 당선자를 배출하는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당선자를 몇 명 낼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놓고 지역주의 투표행태가 완화됐다거나 전국정당화가 이루어졌다고 평가하는 것은 본질을 외면하는 측면이 있다.

선거횟수를 줄여야 한다는 데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잦은 선거로 인한 국력낭비와 소모적 정쟁과 갈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문제점을 지적해 왔다. 대통령 임기가 5년, 국회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장 등의 임기가 4년으로 돼 있는 상황에서 20년에 한 번 동시 선거를 치를 수 있으며, 재ㆍ보선 등을 포함하면 매년 선거가 있다. 한국의 선거는 여야는 물론 후보자 간에 사생결단식 이전투구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잦은 선거는 문제가 많다.
하지만 모든 선거를 동시에 치르는 것도 문제다. 내년 6월 2일 예정된 지방선거에는 시ㆍ도지사, 교육감, 시장ㆍ군수ㆍ구청장, 시ㆍ도의원, 교육위원, 시ㆍ군ㆍ구의원, 비례대표 의원 등 동시에 많은 공직자를 선출하게 된다. 유권자들이 수십 명에 이르는 후보들의 정책이나 면면을 꼼꼼히 따져보고 투표장에 나가기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특정 기호나 특정 정당에게 무조건 한 표를 던져 결과적으로 통합투표(unified vote) 행태를 보이는 모습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지난 대선과 동시에 치러진 4개 시ㆍ도교육감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와 기호가 같은 2번이 무조건 당선된 사례도 있었다. 선거횟수를 줄이는 문제는 대선과 총선 그리고 지방선거 일정을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서 선거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선거주기를 맞추는 문제는 대통령 임기 조정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개헌을 해야 한다. 선거횟수를 줄이는 것은 개헌이 수반되는 등 단순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국회의원 선거구제(選擧區制)도 그렇다. 지난 60여 년 동안 대ㆍ중ㆍ소선거구제를 모두 채택해 본 경험이 있다. 각각 장단점이 있음을 직접 체험한 바 있다. 국회의원 선거구제와 권력구조 간에는 어느 정도 상관성이 있다. 권력구조와 무관하게 국회의원 선거구제만을 따로 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국회의원 선거구를 획정하는 데는 인구대표성 못지않게 지역과 행정단위를 고려해야 한다. 국회의원 선거구 문제는 행정구역 개편을 매듭짓고 난 뒤에 논의하는 것이 순서다.

선거제도 개편은 국민여론, 여야의 이해관계, 권력구조, 개헌문제 등과 복합적으로 연관된 문제다. 궁극적으로 선거제도 개편 효과가 정치의 생산성과 국민통합성을 보장할 수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선거제 개편은 또 다른 정치실험을 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또한 정치개혁을 통치력의 한계를 모면하기 위해 정략적으로 제기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