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식 객원논설위원/시인·인천문협 회장

 요 며칠 전 우리 시에서 발행되는 한 일간지 기사를 읽으면서 느닷없는 ‘우리 인천의 행태’에 멍한 느낌이 들었다. 몇 사람 화가들을 만나보고, 또 질문도 해보았지만 답답함은 풀어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역시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인천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참으로 쉽게, 참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이 같은 일이 일상처럼 인천에는 생기는구나. 이런 느낌밖에는 없었다. 당신네 도시의 주인은 있습니까? 그리고 거기 주체(主體)는 과연 당신들입니까? 하고 누가 묻는다면 그 대답을 과연 어떻게 해야 할지 자못 심각한 자문(自問)을 던지면서 몇 번이고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인천은 늘 이런 식인가. 이 모습이 인천 본래의 면목인가.
이렇게 우울한 어투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송도 석산에 세우겠다는 ‘시립일랑미술관’ 때문이다. 먼저, 그 일간지의 기사 내용대로 비록 가칭이라고는 하지만 어째서 우리 인천시가 ‘인천시립 일랑미술관’을 그렇게 선뜻 갑자기 지어야 하는지 묻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전공도 아닌 분야에 대해 왈가왈부하느냐고 지적한다면 시민의 한 사람의 소견이라고 해 두자. 또 흉물스런 석산에 미술관이 생기면 경관이 좋아지고, 더불어 예술 인프라가 구축되는 일거양득이라고 해도 질문을 시작하겠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서는 우리 인천시가 대답해야 한다는 전제도 던져 두겠다.
오늘까지 인천에 변변한 시립 공공 미술관 하나 제대로 구비되지 못한 마당에 한 사람 개인 미술관은 이처럼 쉽게 ‘시립’이라는 이름으로 지을 수 있는지? 여기 주인공이, 꼭 우리 인천이 나서서 미술관을 지어 기리고 숭앙해야 할 이유가 있을 만큼 아주 최소한만이라도 인천시민들과 심정적인 관련이 있는지? 해서 인천시민의 혈세로 이 같은 미술관을 지을 타당성이나 논리가 충분한 것인지?
물론 그 인천 일간지의 기사는 방금 던진 질문들에 대해 대체로 대답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첫째가 그 주인공의 대표적인 작품이 병인양요를 소재로 한 그림이라는 점과 함께 그것이 루브르에 전시됐다는 점을 꼽고 있다. 생존 작가로서 최초로 루브르에 작품이 전시가 됐고 ‘작품성이 높은’ 이유를 내세우는 듯하다.
물론 병인양요의 현장인 강화가 우리 인천 땅이니 우리가 외면할 수 없을지 모른다. 또 ‘작품성이 높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논점에 대해서는 의외로 답이 간단하다. 굳이 송도 석산을 뚫어 시립으로 개인 미술관을 짓기보다는 좋은 가격으로 구입해 두었다가 후에 번듯한 시립 공공 미술관을 지어 소장, 전시하면 되지 않을까.
또 주인공이 “원효대사, 장보고의 표준 영정을 가장 많이 그린 화가로, 서울대 미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미술관장을 역임했다”면 차라리 우리 인천보다는 서울미대가 그의 작품을 소장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또 우리 화폐의 율곡 영정이나 신사임당 영정 등 “한 국가의 화폐를 2차례 그린 세계 최초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면, 그리고 “독도문화심기운동본부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문화계의 대표적인 독도 지킴이로 유명하다”면 우리 인천보다는 국립 미술관이나 다른 기관이 더 적합할지 모른다.
주인공의 영정 그림을 이야기하다가 보니 문득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화백에 생각이 미친다. 우리 인천은 순종(純宗) 임금의 어진(御眞)을 그린 한말 마지막 어진화가(御眞畵家) 이당 김은호 화백을 낳았다. 그는 인물화 외에 수묵담채(水墨淡彩)의 산수풍경과 문인화(文人畵)에서도 독특한 필력을 발휘했고, 생전에 백윤문(白潤文), 김기창(金基昶), 장우성(張遇聖), 이유태(李惟台), 한유동(韓維東) 등 한국 화단에서 일세를 풍미했던 후진들을 길러내 그로써 한국 회화 발전에 이바지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화가 이당이 바로 「신사임당」 「이이」 「이순신」 「논개」 같은 인물들의 영정을 그렸다. 그러나 천만 아쉽고 통분스럽게도 그의 그림들은 지금은 다 떼어져 사라지고 말았다. 친일 행적 때문이다. 이당의 이름을 뇌이지 못하고 그의 그림을 떳떳이 걸지 못하는 그 아쉬움과 분함이 오늘 한 화가의 작품 등등, 이른바 “문화콘텐츠” 1천500여 점 전체를 받아 ‘시립일랑미술관’을 짓게 하는 것일까…. 
참 의아하다. 어째서 인천은 시립 공공 미술관은 제대로 갖추지 못해도 시립 개인 미술관은 쉽게 생기는 것일까? 이것이 인천과 인천 미술계의 현주소인가? 인천의 미술인들은 모른다거나 묵묵부답이거나 한다. 미술인이 아니어도 머릿속이 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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