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희선 객원논설위원/중부대학교 총장

 오늘 우리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학교와 학원이 보완이나 보충의 관계보다 대조적 현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학교에서는 잠자고, 학원에서는 공부하며, 학교는 증서받기 위해 다니고, 학원은 입시공부를 위해 간다는 말까지 생겨났다. 지금 학교에서는 능력별로 학급을 편성하기 어렵고, 불량하고 부적합한 학생을 퇴교시키는 일도 쉽지 않게 돼 있다. 또 교사들은 각종 행정 지시와 공문처리 등으로 학교의 본질적 기능인 수업에만 몰두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교사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만이 교사로 임용돼 학생을 가르칠 수 있다. 학교는 공교육기관이니까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학원에서는 능력별로 학급을 편성할 수 있으며 불량한 학생은 내보낸다. 그러나 학원은 교사자격증이 없는 사람도 채용돼 가르치는 일에 치중한다. 학원은 사교육기관이니까 이렇게 해도 된다는 것이다.

학교는 평등주의에 터해야 하고, 학원은 자유주의를 행사할 수 있게 돼 있다. 이러한 이해할 수 없는 역리 때문에 평등주의를 강요당하고 있는 학교는 쇠하고 자유주의를 구가하는 학원은 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평준화 정책’이 시작되었던 1974년을 전후해 300여 개의 입시학원이 있었으나 현재는 3만3천여 개로 엄청나게 증가했다. 더구나 학교는 수준별 교육, 눈높이 교육이 안 된다는 이유로 눈높이 교육을 위해 학생들을 학원으로 끌어내 이중부담을 하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 어느 외국의 교육전문가가 이 같은 우리 중·고등학교의 교육현상을 보고 “그러면 학교를 없애버리지 왜 학교와 학원을 둘 다 두고 있느냐”고 한 농담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우리로선 학교의 문을 닫을 수는 없다. 이에 대해 지나친 지적이라고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공교육이 붕괴되는 위기적 상황에 빠져 있다는 지적에 대해 동의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도 분명한 것 같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오래 방치해서는 안되며, 학교교육을 바로 세워야 한다.
현재 유치원으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대략 2만 개의 학교에서 52만 명의 교원들이 1천100만 명의 학생들을 교육하고 있다. 중·고등학교만 해도 5천여 개의 학교에서 23만 명의 교원들이 400여만 명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 가운데에는 교육적 열망을 갖고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애쓰는 학교와 교원들도 적지 않다. 그런 분들의 노력으로 우수한 인적자원이 개발됐고, 나아가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하는 데 공헌한 것은 국내·외적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는 사실이다.
다만 오늘의 우리 공교육 앞날을 걱정하면서, 학교교육이 정상화돼야 한다는 각계의 지적을 재인식하고 대처해 나가자는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해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행상의 어려움과 부작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의 문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여기서 상론하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 거론해보자. 많은 원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원인을 들라면 그것은 평준화 정책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념으로서의 평등주의를 매도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와 평등은 우리 인류가 고안한 가장 위대한 이념이 아닌가. 그러나 자유와 평등은 그 대상에 따라 달리 적용해야 한다. 교육의 기회는 평등하게 주어져야 하지만 수업은 능력에 따라 수준별로 해야 한다. 오늘날과 같은 평준화 정책은 생겨나지 말았어야 할 정책이다. 그러나 지금은 폐지하기도 어렵게 됐다. 한 번 잘못된 교육정책의 폐해가 얼마나 엄청난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바로 평준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교실을 붕괴시키는 평준화 정책에 계속 끌려갈 수 만은 없다. 현 정부의 고교 다양화 정책은 평준화 정책을 보완하기 위한 시책으로서 올바른 방향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구체적 시책과 운영에는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제대로 반영해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 제7차 교육과정의 핵심인 수준별 교육과정도 그 본래의 뜻을 살리면서 제대로 운영해 교실의 붕괴를 방지할 수 있게 돼야 한다. 가르치기 어렵게 된 교실 상황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학교 교육을 활성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변인은 교원이며, 우수한 교원을 확보하고 그들의 전문성과 열정을 발휘하도록 교원정책을 바로 세워야 한다.

교육부를 비롯해 교육청이 학교교육을 지원하겠다는 정책기조를 표방한 지 여러 해가 흘렀다. 특히 국·과를 00지원국 00지원과로 바꾸면서 새로운 행정자세를 내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학교현장에서는 이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교교육을 혼란스럽게 하는 정책지시가 아직도 상존하고 있다. 교육에 자율성은 중요하다. 자율성은 주인의식을 갖게 하고 책임의식을 갖게 한다. 자율성은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스스로 행동하게 하며, 창의성을 발휘하게 한다. 주인의식과 책임의식에서 발현되는 창의성에 의해 교육은 살아 숨쉬고 경쟁력이 생겨나는 것이다. 학교에 교육을 일임하고 실질적으로 지원해주며 책임의 화살도 개별학교가 감당하도록 할 때도 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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