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진삼 객원논설위원/건축비평가·광운대 겸임교수

 서울을 위시한 전국의 지방도시는 예외 없이 봄부터 겨울까지 수많은 종류의 문화축제를 개최해오고 있다. 가히 ‘축제 전국시대’라는 말이 맞을 듯 싶다. 그러다 보니 지역의 특색을 살린 고유한 프로그램도 많은 반면 축제의 성격이 중복되는 것도 상당히 많다. 이 경우 축제가 소비되는 지역적 범주와 맞물려 생각해볼 수 있는데 대부분 개최지역민 위주의 관객몰이에 국한된 기획의지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해 지역주민들로서는 일부러 동종의 축제를 만끽하기 위해 타 도시를 찾아갈 필요를 느끼지 않을 뿐더러 지역의 문화행정가들은 주민들의 시선과 동선을 타 지역에 빼앗기지 않겠다는 지역이기주의적 발상도 한몫을 거들고 있는 셈이다.

그 결과 외지인의 발걸음을 유인할 정도의 축제는 콘텐츠 중심이기 전에 매머드한 행사 규모와 매스미디어를 이용한 전국단위의 홍보 전략을 기반으로 등장하기 일쑤다. 지역고유의 문화적 기반 위에 지자체의 홍보전이 맞물린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지자체의 홍보 등 지원이 미약한 경우는 지역 내 축제로서도 흥행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인천에서 발흥한 국제 클라운마임 축제가 현재의 위상을 점유하게 된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인천시와 남구청의 많지 않은 지원을 근간으로 국내 무대를 뛰어넘어 국제 무대에서 통하는 축제로 일궈냈으니, 여기에는 매년 이 일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그들의 소명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우려되는 바도 있다. 십수 년간 지역을 기반으로 뿌리를 내린 클라운마임의 존재 가치가 크게 공명되지 못하는 분위기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당장은 지나온 시간을 거울삼아 과거보다는 나아진 현재를 두둔할 수 있겠지만 인천시민들과 남구주민들의 입에서 한목소리로 우리 지역의 독특한 문화콘텐츠라 여기고 그것을 공공연하게 발설하며 공연장을 찾을 때라야 만이 비로소 지역문화의 한 상징으로서 클라운마임이 정위(正位)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바로 그 점이 쉽지 않은 까닭이다.

최규호와 박상숙으로 대표되는 작은극장 ‘돌체’의 인적 구성은 개별 광대의 이름, 그 이상의 것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인천 문화를 상징하는 표제어이며, 클라운마임의 검색창을 지배하는 키워드에 다름 아니다. 한국마임의 대들보들로서 그들은 진짜 광대들이다. 나는 동시에 그들이 작은극장의 운영자로서도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점도 인정한다. 그들의 기획력과 극장경영의 노하우는 오랜 기간 여러 번의 실패를 딛고 몸으로 익힌 것이기에 그 또한 무대와 객석을 장악하는 그들만의 탁월한 능력의 일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극장운영에 탁월한 CEO가 아니라 그들이 평생 과제로 이어가고 있는 클라운마임의 콘텐츠가 그들을 뛰어난 CEO로 보이게끔 만든다는 것이다. 나는 작은극장 돌체가 문학산 자락에 있어 행복하고, 예의 두 광대와 후배 광대들의 인생을 건 클라운마임의 콘텐츠가 그 장소에 깃들어 있다는 데에서 희열을 느낀다.
하루 뒤, 9월 17일 제14회 인천 국제 클라운마임 축제가 작은극장 돌체와 인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서 개막 축포를 쏜다. 꼭 1년 전, 이 칼럼을 통해 제13회 행사의 서막을 알린 바 있었는데 순번으로 돌아가며 쓰게 되는 본 칼럼이 전혀 의도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저들 인천의 광대가 새로 쓰는 국제 클라운마임의 축제소식을 다시 같은 시점에 칼럼에 담는 기회를 맞고 보니 개인적으로도 참 기이한 인연이구나 싶다.

돌이켜 보면 ‘클라운마임의 도시 브랜딩’이라는 제목을 달았던 그때로부터 꼬박 1년의 시간이 지났는데 그 동안 무엇이 얼마나 변했을까? 인천은 이제 클라운마임의 본향으로서 자리매김돼 있는 걸까? 여전히 아쉬움은 남지만 인천에 지구촌 광대들이 한자리에 모여들어 써내려가는 클라운마임의 전설이 또다시 한 해의 시간을 더해 14년의 문화적 지층을 견고하게 형성하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의가 있다 할 것이다.

지역에서 발흥하는 여러 문화축제들 가운데서도 순수예술장르를 기반으로 성공리에 정착한 프로그램을 찾아보는 것이 쉽지 않은데 인천 국제 클라운마임 축제는 회를 거듭해오면서 국제적으로 지명도의 상승과 함께 세상의 광대들이 한 번쯤은 서고 싶은 고유한 무대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공연예술분야에서 상대적으로 마이너리티의 예술장르로 구분되는 클라운마임의 국제적인 구심점이 필요한 때에 이렇듯 작은극장 돌체가 탄탄한 지구촌 네트워크를 통해 구축한 하나의 실험적 예술형식이 매년 연속되는 국제적 공연행사로 굳어져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도시의 이미지를 신장시키고 있다는 점은 두고두고 상찬할 일임에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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