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식 객원논설위원/인천문협 회장·시인

 1999년도에 나온 논문이니까 10년이나 된 것이지만, 한국인구학회지(韓國人口學會誌)에 실린 최병목의 논문 「인천시민의 특성별 지역 정체성 비교」가 그 동안의 여러 지적과 논란 속에서도 비교적 정확하게 우리 인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총괄적인 의미에서 본 인천의 정체성에 관한 조사를 보면, 인천은 ‘주인 의식이 없음’과 ‘이제부터 만들어 가야 한다’는 답변이 제일 많았고 그 다음은 인천의 ‘포용력’, ‘선구적 개척정신’, ‘긍정적인 의미의 짠물’, ‘합중시(合衆市)적 다양성’, ‘외세에 대한 호국정신’, ‘세계의 관문도시’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응답 유형으로 보아서는 인천 지역에 대한 이미지를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인천은 서울ㆍ경기인, 충청인, 호남인, 영남인, 이북인, 외국인 등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는 ‘포용력이 있는 합중시적 다양성을 가진 도시’로 지역 차가 서로 다른 출신 성분이 공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이는 ‘세계 속의 도시’와 ‘동북아의 거점 도시’를 추구하는 미래 지향적인 시각에서는 지역주의를 지양하고 지역 통합 이슈와 세계화 물결 속에서 외국인에게도 열린 상태 문화를 제공하는 관문이 될 것이라는 면에서 인천이 추구해야 할 정체성으로 시사하는 점이라고 본다.”
‘인천은 주인 의식이 없다’라든지, ‘이제부터 만들어 가야 한다’는 등 토박이로서는 듣기 참으로 민망한 구절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일단은 전국에서 가장 별난 인천지역의 특성을 썩 너그럽게, 그리고 상당히 긍정적으로 결론해 기술했다. 그러나 이 논문의 필자는 바로 ‘여기에 내린 결론이야 말로 별난 인천이 짊어진 영원한 부정(否定)의 숙제’라는 것을 이미 감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생긴 도시처럼 주인의식을 ‘이제부터 만들어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곳이 도대체 어디 있는가. 인천이 포용력을 가졌다거나, 선구적 개척 정신과 긍정적인 의미의 짠물이라고 운위하는 것 자체가 지극히 구차스러운 ‘억지 긍정’일 뿐이라는 사실을 틀림없이 필자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서울ㆍ경기인, 충청인, 호남인, 영남인, 이북인, 외국인 등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는 포용력이 있는 합중시적 다양성을 가진 도시’라는 말도 참으로 서글프기 그지없다. 포용력이라면 능동적으로 아량 있게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는데 인천이 그러한가. 물이 골짜기 아래로 흘러 모이는 것은 중력의 작용일 뿐, 포용력은 결코 아니다. 넘어지고서는 누우려고 했다는 말과 얻어맞고는 알고 참으려 했다는 웃음거리 언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이는 ‘세계 속의 도시’와 ‘동북아의 거점 도시’를 추구하는 미래 지향적인 시각에서는 지역주의를 지양하고 지역 통합 이슈와 세계화 물결 속에서 외국인에게도 열린 상태 문화를 제공하는 관문이 될 것이라는 면에서 인천이 추구해야 할 정체성으로 시사하는 점이라고 본다.”는 마지막 구절이 또 속을 상하게 한다.
인천이라는 곳에 지역주의는 애초부터 없었는데도 ‘지역주의를 지양하고 세계화 물결 속에서 외국인에게도 열린 상태 문화를 제공하는 관문’ 운운하는 것은 씁쓸한 주례사(主禮辭)에 지나지 않는다. 지역주의라는 철저한 ‘나의 의식’ ‘지역 의식’ 없이, 어느 지역이 어떻게 나아가 열린 상태의 문화를 제공하는 관문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는 그것이야 말로 ‘인천이 추구해야 할 정체성으로 시사하는 점이라고 본다’는 말로써 우리에게 “지역성도 정체성 없는 인천이여, 이제부터라도 스스로 그것을 찾아 이루라!”는 반어적(反語的) 충고를 던진다. 그래서 그가 인천의 정체성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공교롭게도 현실에서는 거의 모두가 네거티브로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근래 설왕설래하고 있는 모씨의 미술관 건립 문제가 그 예일 것이다. 지역성도 정체성도 아무 상관없이 그 개인의 미술관을 지어주자는 것이다. 그제 있었던 대화 자리에서 ‘관계자들’이 보인 세 가지 행태도 곧 인천에 주인이 없고, 이 합중시에 주인의식이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답답하다. 내 고향 인천에 대한 짙은 회의를 풀 길이 없다. 정체(正體)는 없이 아무렇게나 굴곡(屈曲)하고 구르는, 종잡을 수 없는 안개 도시만 있다는 느낌이다.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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