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진삼 객원논설위원/건축비평가·광운대 겸임교수

 그날, 선장 없는 난파선이 그랬을 것이다. 지도자 없는 난민의 행렬이 그랬을 것이다. 다섯 시간 여 걸어서 종착지점에 도달한 걷기대회 참가자들은 다시 1시간 넘게 도로를 걷고, 영종 아파트 단지의 뒷길을 걸어서 공항철도 운서역까지 꼬리에 꼬리를 문 분통터지는 걷기를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주최측 어떤 누구도 길잡이가 되어주지 않았고, 시청 상황실과 행사본부 사무국 어느 한 곳도 마땅한 대응자세를 보여주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인천시장 이하 관계 공무원 및 시의회 지도자 어느 한 사람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길바닥에 내쳐진 자식들 모양 연신 씩씩대며 무능한 행정력을 성토하며 걸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일까?
오전 9시 30분 출발한 3만이 넘는 인천대교 종주 대오는 대교 주탑을 넘어 평생 한 번의 기회를 놓칠세라 거침없이 종착지점인 영종IC를 향해 걷고 또 걸었다. 직전, 주탑 부근에서는 강풍 등 기상악화를 이유로 더 이상의 대교 진출을 허용할 수 없다는 주최 측과 그것에 동의할 수 없다는 시민들의 격렬한 몸싸움이 한바탕 일었다. 주탑 부근 반환점에서 돌아가야 한다는 사전정보를 듣지 못했던 대부분의 참가자는 주최 측의 일방적인 저지에 크게 반발했고, 결국 주최 측은 밀려오는 행렬에 바리케이드를 열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일부 반환점을 돌아 출발지점으로 돌아선 참가자들을 빼고도 그 숫자가 물경 2만5천 명은 넘어 보였다. 날은 화창했고, 걷기 참가자 선두가 주탑 부근에 당도하던 오전 10시 30분 경기·인천·서울에 내려졌던 강풍주의보는 이미 해제된 상태였다.
10월 17일, 인천대교 개통을 기념해 총 5만여 명이 참가한 인천대교 걷기대회에는 인천시민은 물론 서울과 인근 도시민들이 대거 참여하는 큰 호응을 얻었다. 전날 밤부터 행사 당일 새벽 내내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굵은 비가 거센 바람을 타고 대지를 두들기고 있었다. 밤새 요란스러웠던 비바람은 사람들이 걷기대회 출발지점으로 향하던 오전 7시를 넘어서면서 잦아들었다. 비는 오전 8시가 안 돼 그쳤고, 바람도 거세지 않아 걷기에는 맞춤한 기상조건이었다. 그런데 주최 측은 걷기대회 출발 직전에 이르러 참가자 일부에게 종주코스 불가를 표명했고, 영문을 모르는 여타의 참가자들은 인파에 묻혀 떠밀리다시피 걷기대회의 출발지점을 빠져나갔던 것이다.

문제점은 여러 곳에서 노출됐다. 3차선의 인천대교 걷기 코스 4km 지점마다 이동식 화장실 부스가 놓여져 있었다. 다리 위에서 용변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이 장소는 화장실을 이용하려는 참가자들이 도로를 막고 늘어선 대열과 계속해 걷는 이들이 심하게 엉키면서 일대 혼잡을 이루었다. 운영상의 미숙이 드러난 사례였다. 이동식 화장실 부스를 중앙분리대에 거치해 집중 배치시킨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이를 이용하려는 시민들의 행태 예측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전체 코스에 걸쳐 이동식 화장실 부스를 드문드문 설치해 놓았던들 화장실 부근의 아수라장은 미연에 방지했을 것이다.

게다가 걷기대회를 운영하는 주최 측은 걷기대회의 수칙 혹은 요령을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어야 했다. 1시간 단위로 휴식을 취하게 한다거나, 중간중간 쉬어가며 걸을 수 있도록 휴게장소도 충분히 마련해 놓았어야 헸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그게 아니었다. 되레 걷기에 지친 참가자들이 갓길 부근에 앉아서 쉬는 것조차 불허해 연신 도로 안으로 내모는 통에 걷기에 익숙지 않은 많은 참가자들은 운영요원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등 고역을 치루기도 했다. 심지어 먹을 것도 걸으면서 먹으라고 종용했다. 좋게 생각하면 참가자의 안전을 위한다는 취지였겠지만 오랜 시간 걷기에 필요한 것은 중간중간의 적절한 휴식이 우선이라는 단순한 요령을 간과한 것이다.

그랬다. 인천대교 걷기대회에서 참가자들은 인천내륙에서 영종도로 길게 뻗은 다리 위를 걸으며 평생의 숙원을 이루었다는 포만감에 젖어 있었다. 기상상황을 분초 단위로 파악해가며 시민들의 생각이 어디에 미치고 있는지를 현장감 있게 파악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했던 그날, 대다수의 시민들이 원하고, 기상조건도 쾌적했음에도, 행사의 규모를 대폭 축소한다는 주최 측의 결단에만 목을 맨 채 정작 시민들의 안전을 수수방관했던 지도자들은 인천대교의 종주에 성공한 시민들을 강력한 리더십에 정면 도전한 괘씸죄로 묶어놓았거나, 공공연히 저항하는 민간세력으로 일축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렇지 않다면 종주에 성공한 수만의 참가자들을 그렇게 홀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시민의 머리 위에 군림하려드는 전근대적 리더십이라면 그것은 이미 리더십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고, 시민은 더 이상 그런 존재를 반겨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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