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병관 객원논설위원/인하대 의대 의학전문대학원장

며칠 전 외래 진료실에 어머니 한 분이 건강하게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들어오셨다. ‘어떻게 오셨느냐’고 하니까 ‘아이의 면역검사를 하러 왔다’고 하신다.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아이에 대해 면역검사라는 말이 선뜻 이해되지 않아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다른 병원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나요? 지금까지 감기 등 잦은 염증이 있었나요?’ 등에 대해 질문하고 ‘그런 것 없었다’라는 대답에 ‘그러면 왜 면역검사를 하시려고 하는가요?’하고 여쭈었다. 대답은 ‘이 아이가 조금 있으면 학교에서 신종플루에 대한 예방접종을 받을 텐데 주사를 맞아도 되나 해서요’하신다. 아이의 진찰 소견은 물론 정상이었다. 예방접종에 대해 자세히 설명드리고 학교에서 신종플루에 대한 예방주사를 하게 되면 꼭 하십시오.’ 라고 말씀드리니 ‘알았습니다’라고 대답하시며 진료실을 나가셨지만 어머니의 표정에 불안함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주 의사들의 모임이 있었다. 신종플루의 최우선 접종 대상인 의사들에게서도 ‘꼭 맞아야 돼?’하는 이야기가 들린다. 물론 당연히 맞을 것을 전제하면서도 있을 수 있는 부작용 때문에 진담 반 농담 반 하는 이야기다. 의료인들 사이에서조차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으니 일반인들 사이에 신종플루 예방접종에 대한 걱정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결론은 신종플루에 대한 예방접종은 꼭 해야 된다는 것이다. 예방접종을 했다고 100% 안전한 것은 아니다. 항체 생성률이 60%를 넘는다고 하니 그 정도 안전이 보장되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60% 이상이라는 것은 결코 낮지 않은 항체 생성률이다. 또하나 중요한 것은 소위 집단 면역이라는 것인데 예방주사를 통하든 자연 감염 후든 항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30%를 넘으면 그 질병은 전파력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 중요한 사실을 간과한 채 개인에게 극히 드물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만을 생각하며 접종을 걱정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신종플루에 대한 공포로 아직도 온 나라가 시끌시끌한 상황에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보건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을 믿고 따르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다. 의학과 의료행위는 인간의 건강을 위한 학문이요 술기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게 어떤 의료행위가 적용되기까지는 수많은 단계를 거쳐 안정성을 확인하고 나서야 실시되는 것이다. 나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다. 예방접종에 관한한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예방접종을 통해 전염병으로부터 많은 어린 생명들을 구했기 때문이다. 나의 경험이지만 여름철이면 많은 초등학교가 수업을 못하고 휴교를 했다. 일본뇌염 때문이었다. 매년 남녘으로부터 발생하기 시작해 전국에 퍼져나갔던 질병이다. 한 해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환자도 엄청 많았지만 옛이야기다. 디프테리아의 합병증인 심근염으로 갑자기 사랑스런 자식을 잃고 예방접종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울부짖던 부모님들의 모습, 결핵성 뇌막염으로 전신이 마비돼 똑바로 눕지도 못하는 환아들의 팔다리를 주무르며 듣지도 못하는 귀에 대고 아이의 이름을 부르던 그 어머니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어떤 예방접종이라도 부작용은 있을 수 있다. 오래전 서울의 모 대학병원에서 소아가 백일해 예방접종을 받고 부작용으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지금은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모든 후속조치가 국가에 의해 행해진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런 제도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주사한 의사와 병원에 책임이 지워졌다. 당연히 모든 소아과 의사들이 백일해 접종을 기피하게 되고 ‘디피티’ 접종에서 백일해 예방접종인 ‘피’를 빼고 ‘디티’만 하게 됐고 그의 부작용으로 많은 백일해 환자가 발생했던 사건(?)이 있었다. 예방접종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내가 자주 인용하는 예다. 여하튼 전염성 질환을 감소시키는 데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의 역할이 컸고 전염성 질환의 감소는 사회경제학적으로 우리나라에 크게 기여했으며, 또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켰음에 틀림없고, 모든 소아청소년과 의사로 하여금 큰 보람을 갖게 했다.
예방주사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것이므로 기회가 주어지면 꼭 접종을 받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상식과 기본적 생활습관임을 강조한다. 이제 몸에 배기 시작한 예방수칙들인 손닦기, 기침 예절 등은 철저히 지켜야 한다. 지역거점 병원을 알아두는 것이 좋고, 의사와 상의하는 것을 주저하면 안 된다. 보건 당국자나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당분간 환자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모든 질병에 대해 예방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을 30여 년의 경험을 통해 강조하며, 최소한의 피해로 이 세계적 대유행이 끝나도록 보건 당국자, 의료인은 물론 일반인들도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 해야 한다.

<필자 약·경력>
▶1975. 2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1993. 9 ~ 1994. 8 미국 UCLA 소아면역 및 알레르기 연수
▶2007. 3 ~ 2009. 4 대한 소아알레르기 호흡기학회 이사장
▶현재 환경부지정 인하대병원 알레르기질환 환경보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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