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득표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정치학)

 APEC 정상회의 참석차 싱가포르를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4일 동포 및 진출기업인 대표 간담회에서 “인기를 끌고 인심을 얻는 데는 관심이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는 민심이 극명하게 갈려 있는 세종시 수정과 4대 강 살리기 사업 등을 변함없이 추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그 무게나 여파가 여간 큰 것이 아니다. 심지어 권위주의 시절 대통령의 표정에 따라 주식 값이 등락하는 경우가 있었을 정도라고 하니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한 말은 국민적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그 진의를 파악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상황, 문맥, 전체의 흐름 등을 고려해야 한다. 거두절미하고 극히 일부분만 인용해 해석하는 것은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인기에 관심이 없다고 한 말의 꼬투리를 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분명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대통령의 진정한 속내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대통령의 발언은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도 있고, 또한 정반대로 심히 우려할 만한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좋게 해석한다면 대통령이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판단한 정책은 철학을 갖고 소신껏 추진하겠다는 의미가 담겼다고 볼 수 있다. 여론에 질질 끌려 다니는 그런 대통령은 되지 않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인기에 영합해 국민의 눈치를 살피느라고 국가적으로 필요한 정책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고 볼 수 있다. 장기적 안목을 갖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사심 없이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뜻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당대에는 반대하는 국민이 많더라도 훗날 역사가 올바르게 평가해 줄 것이란 기대와 희망 그리고 확신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국민이 대통령의 진정성을 몰라주어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나쁘게 해석한다면 대통령은 현명한데 국민이 무지하다는 속뜻이 내포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특정 정책에 대해 대통령은 그 효과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 국민은 모른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여론의 오류를 지적할 때 적용되는 다원적 무지이론을 인정하는 맥락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이 뭐라고 하던 내 방식대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민심무시’ 의미도 있다고 볼 수 있다. 독선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오만함을 드러낸 것이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우리는 그 동안 권위주의적인 정치지도자들이 국민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면서 정당화의 한 방법으로 항상 역사를 운운하고, 후세평가에 맡기겠다는 모습을 많이 목격했다. 물론 성공한 정책도 실패한 정책도 있었다.

한 나라의 국정 최고 책임자가 민심에 끌려 다니는 무소신도 문제지만 이를 깔보는 권위주의적인 행태도 옳지 않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양면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이 인기를 끌고 인심을 얻는 데 관심이 없다면 국민을 무시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주적 정치과정을 무시한 정책결정과 그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리더십은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하게 된다.

우리나라 국민은 대세에 편승하고 바람에 휩쓸리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민심이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성적 자극에 요동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정책판단에 있어 완전 무지몽매한 그런 국민은 이제 더 이상 아니다. 대통령이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이란 확신과 철학이 있다면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일시적인 대중영합주의에 편승하는 정책이 아니라면 국민에게 직접 호소해야 할 것이다.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과 리더십에서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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