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제훈 객원논설위원/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

 이탈리아 피렌체하면 과거 르네상스의 중심지이자 유럽 관광 명소의 하나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작 그곳에 유럽대학원대학(European University Institute ; EUI)이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몇 안 된다. 이 대학은 1972년 당시 유럽경제공동체 회원국 6개국이 공동 출연해 만든 유럽통합 문제를 주로 연구하는 대학원중심 대학이다. 여기서 주로 연구하는 분야는 경제학, 법학, 역사와 문명, 정치학 및 사회과학 등으로 유럽통합과 관련된 제 분야를 망라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유럽통합은 프랑스 드골의 민족주의 정책으로 인해 70년대 정체기를 경험한다. 그럼에도 유럽의 지도자들은 유럽대학원대학 같은 유럽통합 문제를 다루는 교육 기관을 공동으로 설립하는 지혜를 모음으로써 80년대 들어와 유럽통합의 도약을 가능하게 한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얼마 전 인천에서 제1회 아시아경제공동체포럼(AEC Forum)이 개최돼 아시아에서도 장기적으로 유럽연합과 같은 지역통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공감대를 마련하는 역사적 대 장정의 첫걸음이 내딛어졌다. 여기서 나온 주요 사업계획 중 하나로 아시아에서도 유럽대학원대학(EUI)을 벤치마킹하는 가칭 ‘아시아공동체지도자아카데미(Leadership Academy for Asian Community)’가 한·중·일 등이 주도해 설립하자는 안이 제안됐다. 한·중·일 등 아시아 주요국의 차세대 지도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 같이 교육시킴으로써 이들이 동창생이 되고 나중에 본국에 돌아가서 각 분야의 지도자가 돼 활동함으로써 장차 아시아공동체나 아시아연합의 결성에 핵심 역할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구상이다.
아시아 그 중에서도 한·중·일은 정치, 경제 등 분야에서 아시아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도 영토 및 역사 문제 등 장애 요인이 많아 지역통합의 모멘텀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다. 지난해 12월 사상 최초로 한·중·일 3국만의 별도 정상회의가 일본 후쿠오카에서 개최됐다. 그 전에 소위 아세안+3라는 틀에서 아세안 10개국이 모이는 자리에서 추가로 한·중·일 3국이 같이 모인 적은 있었지만 처음부터 3국 정상이 따로 모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지난 노무현 정부 때 동북아공동체 구상 하에서 한·중·일 3국의 협력증진을 추구했지만 일본의 신사참배나 독도영유권 주장 등 우익적 정책노선의 발호로 3국간의 긴장이 오히려 높아졌었다. 지난해 후반부터 시작된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러한 3국 간의 긴장을 협력으로 전환시키는 하나의 계기가 됐다. 금년 들어 지난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제2차 한·중·일 정상회의가 개최됐다. 특히 이번에는 친 아시아정책을 표방하는 일본의 하토야마 총리가 한·중·일 등이 주도해 소위 아시아판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추진하자는 제안을 해 주목을 끌었다. 유럽의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은 유럽 대학에 재학하는 대학생이 유럽연합 내의 다른 대학에서 학점을 자유롭게 취득하고 그것을 본래 대학에서 인정해주는 제도로서 대학 교육을 통해 유럽을 통합하는 효과가 큰 정책이다. 그러나 이 제도를 바로 아시아에 적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우선 한·중·일 간에도 대학 간의 질과 제도 등의 격차가 크며 각국 내에서도 상호 학점 인정이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유럽의 경우도 2000년대에 들어 와 본격 시작한 제도이며 오히려 이보다는 70년대에 유럽이 시작한 유럽대학원대학 같은 것을 아시아에서 시작해보는 것이 보다 실현 가능성이 큰 시도라 하겠다.
이번 베이징 3국 정상회담에서도 확인된 것은 일본이나 중국 중 한 나라가 주도하는 계획은 다른 한 나라의 거부감 때문에 실현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하토야마 총리의 ‘동아시아공동체구상’은 중국으로서는 명분상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지만 중국의 견제심리 때문에 정상회담 내내 이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 에라스무스 프로그램도 당분간 실현 가능성이 크진 않을 것 같다. 따라서 한국이 이런 상황에서 보다 실현 가능이 크고 중국과 일본 모두 거부감이 적은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공동체지도자아카데미’ 구상은 우선 한국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일본 하토야마 총리를 설득한 다음 중국을 설득하는 순서가 돼야 한다. 인천이 나서서 ‘아시아공동체아카데미’를 적극 유치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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