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식/시인·인천문협 회장

子路 宿於石門. 晨門 曰 奚自. 子路 曰 自孔氏. 曰 是知其不可而爲之者與.
(자로 숙어석문 신문 왈 해자 자로 왈 자공씨 왈 시지기불가이위지자여)
자로가 석문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문지기가 자로에게 묻기를, “어디서 오시는 겁니까?”했다. 자로가 대답하기를 “공씨 댁에서 옵니다.”했다. 그러자 문지기가 “바로 그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것을 하는 사람 말입니까?”라고 했다.

이 글은 논어 헌문(憲問)편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자로가 석문 지방을 지나다가 그곳에 묵게 됐다. 석문은 노(魯)나라의 성문이 있는 곳으로 이 성문을 열고 닫고 하는 문지기가 새벽에 지나가는 자로에게 물었던 것이다. 공씨는 공자(孔子)를 지칭하는 말인데, 자로가 대답하자 문지기가 대번에 알아듣고, 얼핏 들으면 비꼬는 것처럼 응수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의 말이 재미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것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액면 그대로라면 ‘현실 상황을 모르는 채 고집을 피우는 공자’를 비웃는 말이 된다. 그러나 문지기는 예사 사람이 아니라 공자를 썩 잘 알고 있는, 상당히 현명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가 한 말의 본뜻은 공자에 대한 기롱(譏弄)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공자의 이상이 너무 높아 당시의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받아들여질 수가 없음을 알고 있었고, 한편 공자 스스로도 그런 현실을 알고 있으면서 굳이 이루려 하는, 공자의 본심을 또 꿰뚫어 이해하고 이야기했던 것이다.
공자의 이상은 어느 나라에서도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음은 알려진 일이다. 그의 이상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국가의 근본 관계, 곧 인(仁)과 예(禮)를 기본으로 한 관계를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무력에 의해 패권을 다투던 춘추전국시대 어느 국가에서도 그것은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상 그 자체였다.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인과 예가 통하는, 인과 예에 의해 통치되는 이상 사회, 이상 국가의 달성을 공자는 역설했던 것이다.

이렇게 길게 논어 구절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런 통치, 이런 행정이 오늘날에도 기본이요 요체일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인과 예라는 것이 생각해 보면 그다지 어려운 것도 아니다. 너와 내가 인간적인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서로 절제로써 현실 질서를 유지하는 것, 이것이 요약된 인과 예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실제에서는 이것이 그토록 어렵다. 아니 결코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헌문편의 한 구절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것을 하는 사람’이란 말을 곱씹게 되는 것이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것을 하는 사람이라! 그러니까 석문의 문지기가 자로에게 한 발설은 이상이 실현되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답답함의 토로였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오늘의 현실에서는 이와 전혀 반대의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것을 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 즉, 해서는 안 되는, 또 되지 않을 일을 그 자신이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끝내 밀어붙이는 경우다. 이것은 해악이고 사회의 불행이다. 공자의 이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 그것의 수십, 수백 배 국가 사회의 불운이다.
궁금한 것은 만약 이런 경우를 만났을 때 석문의 문지기는 뭐라고 할까 하는 점이다. 하지만 답은 이내 알 수 있다. 틀림없이 그는 자로를 붙잡고서 “바로 그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것을 하는 사람 말입니까?”라는 똑같은 말을 반복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공자의 경우와 정반대로 고집과 횡포를 꼬집는 내용이 될 터이다.

시간을 돌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1년만을 돌아보아도 우리네 삶에 이런 일, 이런 모습이 흔하게 드리웠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전히 밀어붙이고 있는 무슨 미술관 짓는다는 일도 바로 이런 일 중의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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