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희선 객원논설위원/중부대학교 총장

 인간의 삶에서 모든 활동에는 가치가 중요한 기능을 한다. 이러한 가치를 내재적 가치와 외재적 가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내재적 가치는 본질·자율에 밀접하게 관련돼 있고 외재적 가치는 수단·타율에 깊게 관련돼 있다. 공부가 재미있어 하는 것은 내재적 가치에 따르는 자발·자율적인 동기로서 공부가 즐겁고 신이 난다. 그러나 부모가 하라고 해서, 시험보기 때문에,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하는 공부는 다소간 차이는 있지만 외재적 가치에 의한 타율적 동기로서 그 만큼 공부에 싫증이 난다.
동기에는 ‘기능적 자율화’라는 현상이 있다. 처음에는 부모의 칭찬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공부하던 것이 점차 공부 그 자체가 스스로 재미있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그렇다고 기능적 자율화가 아무 동기에나 모두 적용되는 것이 아니며 또 거기에는 일정한 원리가 있다. 또한 인간의 어떤 욕구의 만족에도 내재적, 외재적인 두 가치가 모두 해당된다. 예건대 성취의 욕구, 창조의 욕구는 출세와 치부의 수단도 되지만, 그 추구 자체가 보람과 환희를 주는 내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내재적·외재적 어느 쪽의 가치가 삶의 장면에서 우리들을 열중, 몰입하게 하느냐에 있다.

내재적 가치에 의한 자발·자율의 경우에는 행동의 과정이 신나고 몰두적이고 헌신적이며, 행동의 효과가 크고 휼륭하고 성취적이 된다. 그러나 타율의 경우에는 그 반대가 된다. 노벨상 사무국의 국장이 한국을 다녀가면서 기자회견을 통해 한 말이 생각난다. “한국도 많이 경제발전을 했으니 이제는 노벨상을 타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벨상을 탈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노벨상을 타야겠다는 생각을 깨끗이 버리고 그저 과학이 미치도록 재미있고 즐거워서 주야로 몰두하는 사람들을 많이 길러내는 일입니다.” 노벨상을 타기 ‘위한’ 과학정책, 과학연구로서는 도리어 노벨상을 타지 못한다는 말이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이 흔히 하는 말로서 “일등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는 말과 상통한다.
1988년 올림픽 때 서울에서 택시 운전기사들이 올림픽을 위해 친절하게 손님을 대접하자는 운동을 전개했다. 과연 올림픽 때는 깨끗하고 친절해졌다. 그러나 올림픽이 끝나자 택시의 깨끗함과 친절함은 사라졌다. 친절과 청결 그 자체가 바람직한 것이라는 내재적 가치로서가 아니라 올림픽 손님 맞이를 ‘위한’ 수단적 가치로 촉구했기 때문에 올림픽이 끝난 이상 과거로 회귀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교육에 관계되는 모든 행위, 즉 학생의 학습, 교사의 교수, 교육행정가의 행정행위가 최대한 내재적 가치에 의한 자발·자율적인 행위가 되도록 하는 것을 근간적인 원리로 삼을 것을, 또한 그러한 자발·자율성을 어떻게 유도하느냐에 정책의 최대 역점을 둘 것을 제의한다. 그것은 교육전반에서 그래야 하지만, 사고력의 교육 특히 창의력의 교육에서는 결정적인 원리이다. 또 한편 우리는 요즈음 교육 붕괴의 가장 큰 원인을 그 동안 ‘교육개혁’의 슬로건으로 진행돼 온 관료적 권위주의적인 지시·명령 일변도의 타율체제에 기인한 교원들의 사기 붕괴라고 해석한다면, 자율·자발의 신장은 붕괴된 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는 요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학생들의 학습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그들의 타율적 학습활동을 줄이고, 자발·자율적 학습활동을 유도할 수 있는 방도가 심각하게 연구되고 실현돼야 한다. 잦은 시험의 두려움, 권위주의적 교수방법, 과중한 학습부담 등으로는 자발·자율을 필수로 하는 사고력·창의력이 발현될 길이 없다. 교사의 교수활동도 자발·자율성이 그 생명이다. 교사들은 직전양성·현직연수 등을 통해 대부분 전문적인 사명감, 교양과 식견과 기량, 그리고 전문윤리를 소유하고 있는 전문인이다. 행정체제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일종의 교권침해다. 전문인을 자처하는 사람일수록 타율적 지시나 간섭을 싫어하며 그 누적은 의욕과 사기의 상실에 직결된다. 교사의 전문성·자율성의 존중이 교육효과를 극대화하는 첩경이다. 다만 자율에 따르는 책임을 강조하자는 것이 요즈음 대두되고 있는 ‘교원평가’인 것이다. 자발·자율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기본 덕목이다. 학생에게, 교사에게 그리고 행정가에게 제 각기의 처지에 응당한 자발·자율성이 인정되고 존중되고 촉진될 때 제 각기의 활동 효능도 극대화된다는 신념이 자유민주체제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근래 우리 사회에는 만사를 그 자체의 보람 때문이 아니라 어떤 다른 것을 얻는 수단으로서의 쓸모 때문에 추구하는 수단주의적 풍토가 너무 짙게 퍼져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만연된 수단주의적 풍토의 부작용이 여러 부분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재인식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해 나가야만 우리 사회가 선진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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