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병관 객원논설위원/인하대 의대 의학전문대학원장

 오래전에 연세대 김동길 명예교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교수께서 세월이 빨리 흘러감을 자신이 느끼기에 ‘쉰 살까지는 한 해 한 해가 가는 것 같더니 쉰이 넘으면서는 쉰다섯, 예순 이렇게 되더니 예순이 넘어서는 예순 다음에 일흔이 되는 것 같더라’고 말씀했던 것을 기억한다. 나도 세월이 쏘아놓은 살같이 날아가는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세밑과 새해, 어제와 오늘이 하나의 선상에 있는 것을 생각하면 ‘세월이 가는 것이 아니고 세월은 그대로 있는데 내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흘러가는 세월 속에 끌려가는 내가 아니라, 시간의 연장선상에서 가는 해에 내가 한 일이 무엇이었으며, 오는 해에 할 일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고, 매년 이 즈음에 내가 하는 일 중의 하나다.

의학전문대학원장으로서 급변하는 의학교육의 소용돌이 속에서 뒤쳐지지 않고 오히려 앞서가려 노력한 한 해였고 많은 수확이 있었음에 감사한다. 우수한 학생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를 숙고하며 시작된 금년 한 해였다. 감사하게도 대학교와 병원의 도움으로 많은 장학금 마련과 기숙사를 포함한 학생 후생시설의 확보로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함에 따라 주어진 소임이었다. 많은 대학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의과대학으로부터 의학전문대학원으로의 이행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의과대학생들과 의학전문대학원 학생들 간의 갈등, 우리 대학은 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한 대학으로 평가받게 된 점 매우 감사할 일이다. 교육과정, 교육방법, 교육평가 모든 분야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의학교육 분야, 우리 대학 역시 이 일을 추진하며 초기에는 갈등도 많았고 논쟁도 있었지만 이제 서로를 이해하며 정착단계에 들었다고 생각하며 감사한다. 표준화 환자(모의환자)를 학생교육에 적용하는 제도를 도입해 모의환자의 모집, 교육, 관리, 교육에의 적용까지를 우리 대학에서 자체적으로 수행하고 있어 향후 이 교육의 효과에 대한 기대가 크다. 특별히 이 분야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의학교육자이자 임상 의사를 스카우트할 수 있었던 것도 감사할 일이다.
모든 의학전문대학원의 교육목표에는 ‘1차 진료를 수행할 수 있는 의사’를 양성한다고 돼 있다. 의과대학이나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면 기본적인 환자진료는 가능하도록 교육한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제 의학교육의 혁신적 개혁을 통해 앞으로는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과정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임상 실습 교육인데 지난 2학기 중에 임상 실습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작성할 수 있었다. 34개 임상과 교수들이 참여해 각 과의 특성에 맞게 무엇을 가르칠 것이며,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는 준비할 것이 무엇이며 교육 효과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밤새워 논의하고 조정한 결과다. 애써 준 모든 교수들과 교육에 대한 업무량이 늘어남을 알며 이를 수용해 준 모든 교수들께 감사한다. 대학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연구비 수주와 논문 발표에 있어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어 총장의 치하가 있었던 일 또한 감사할 거리다. 대학 발전에 중요한 요소인 기금 확보에도 동창회를 중심으로 한 여러분의 도움으로 경제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모금액수가 매일 증가하고 있음에 감사한다. 
의학교육의 변화는 ‘좋은 의사’ 양성을 목표로 시작됐다.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일까? 사람에 따라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겠으나 나는 ‘사람 냄새나고 실력 있어 멋있는 의사’라고 정의했다. 그래서 의학교육에서 지금까지는 그리 강조되지 않았던 인문사회 분야의 교육을 보강했다.
혁신적으로 변화된 의학교육의 받고 양성되는 의사는 틀림없이 실력 있는 의사가 될 것이다. 거기에 사람 냄새를 더 많이 풍길 수 있는 의사를 만드는 것이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생물학적인 질병을 치료하는 것에 더해 아픈이들의 마음을 만져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의사를 만든다는 것, 의학교육의 책임자로서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이 2009년 ‘기호포럼’의 마지막 순서일 것이다. ‘고맙다’ ‘감사한다’라는 단어가 많이 쓰였음을 발견한다. 모두가 나의 주변이나 이 사회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 모든 도움에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시간의 연장선에서 보면 2009년 말이나 2010년 초가 특별히 다를 것은 없다. 그러나 이렇게 한 해를 마무리하며 감사할 거리를 찾아 한 획을 그어보는 것이 세밑의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 감사의 내용은 더 나은 새해를 위한 준비에 거름으로 쓰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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