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제훈 객원논설위원/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

새해 이맘때면 항상 반복하는 것이 있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마음으로 나름대로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는 이런 저런 이유로 해서 얼마 못가서 포기하는 일이다. 지난해에는 세계금융위기 등 유난히도 힘든 일이 많았던 한 해였다. 그래서 그런지 올해는 작년보다는 좀 나아지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을 가져보는 것은 나만의 일은 아닌 것 같다. 올해는 21세기 들어와서 10년이 되는 해다. 10년 전 새천년을 맞는다고 법석을 떨고 가슴 설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이 지나다니 왜 이렇게 세월이 빨리 가는지 아마도 나도 나이를 먹긴 먹은 것 같다.
연말연시를 조용히 보낸다고 가급적 모임에도 안 나고 그 동안 못 읽었던 이런 저런 책을 보았다. 연초에 왠지 철학책에 손이 가서 몇 권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을 정리해 보았다. 한 가지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철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탈레스가 이야기한 아르케(arche)이다. 우리말로는 처음, 원리 등으로 번역되는데 정신없이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한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할 화두가 아닌가 한다. 이 세상의 처음은 어떠하고 그 기본원리는 무엇인가가 아마 철학의 탄생을 가져온 물음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 세상의 처음으로 돌아갔을 때 성경에서는 말씀이 있었다고 했고 그리스에서는 로고스, 즉 이성이 있다고 했다. 유교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고 인의로 평화롭게 어울려 사는 이상적 공동체인 대동(大同)사회가 있었다. 이런 어려운 질문이 아니더라도 우리 각자가 새해에 처음으로 세우는 신년 계획이 우리에게는 우리의 아르케가 될 수 있겠다.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도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실천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일이라는 것이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많이 생긴다. 건강이 안 좋아질 수도 있고 집안에 우환이 생길 수도 있고 직장에서 해고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인간이니까 나태해질 수도 있고 유혹에 빠질 수도 있어 처음 생각과는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럴 때 특히 새해 이맘때 그 동안 해온 일들에 대해 돌아볼 기회를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목표로 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돌아보면서 일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back to the basic)이 필요하다. 복잡한 일 일수록 처음의 목적과 기본원리 등을 되짚어 봄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요즘 세계적 대기업에서 수요가 많은 강의가 경영학 같은 전문 강의가 아니라 인문학이나 교양에 대한 강의라고 한다. 치열한 시장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아이템 등을 개발해야 하는데 창조성은 기존의 매뉴얼화 되어 있는 전문 지식으로는 얻어질 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많이 이야기하는 학문 융합도 이런 맥락에서 창의적이고 새로운 시각과 방법론을 찾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보는 학문 융합은 그저 몇 가지 관련 학문을 기술적이고 기계적으로 합쳐 놓는 경우가 많아서 의도하는 바 진정 새롭고 창조적인 것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테크닉보다는 처음과 기본으로 돌아가서 원리적인 면을 더 생각해야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이공계 학생에게는 인문학을, 인문 사회계 학생에게는 지연과학에 대한 소양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이것이 기본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세상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요, 사람의 일은 결국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다.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동서양의 모든 종교와 철학 그리고 사상이 다루어 왔던 오랜 아젠다였다. 사람의 마음처럼 간사한 것이 없다. 매 순간마다 변하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동양에서는 일찍이 중용(中庸)의 지혜를 가르쳐 왔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전하고 순임금이 우(禹)임금에게 전한 말이 모두 열여섯 자다. ‘인심유위(人心惟危)요 도심유미(道心惟微)하니 유정유일(惟精惟一)해야 윤집궐중(允執厥中)하리라’는 것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오직 위태롭고 도의 마음은 오직 미묘하니 오직 정성스럽고 오직 한결같아야 진실로 그 중심을 잡으리라는 말이다. 때로는 동물같이, 때로는 신과 같이 양 극단으로 움직이는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이 세상일의 요체라는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그의 윤리학에서 덕을 두 악덕, 즉 과도로 말미암은 악덕과 부족으로 말미암은 악덕 사이의 중용(a golden mean)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 모두 동서양의 마음을 다스리는 요체인 중용의 마음을 초심으로 해 새해를 지혜롭게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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