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식 인천문협회장/시인

 몇해 전에 사 두고는 읽지 않다가 근래 우연히 서가에서 찾아내 먼지를 털어낸 책이 미국의 신문기자요 풍자작가이며 단편소설가, 그리고 괴기소설가로 이름을 날렸던 앰브로스 귀넷 비어스(1842~1914, Ambrose Gwinnet Bierce)의 『악마의 사전(The Devil's Dictionary)』이다. 진즉에 읽을 것을, 책이 온통 풍자와 위트, 유머와 독설, 해학으로 가득 차 있어 보는 재미가 여간 좋은 것이 아니다. 이미 요 얼마 전, 다른 글을 쓰는 데에도 한 번 인용을 했던 적이 있지만, ‘2천여 개에 달하는 영어 단어들에 대해, 지금까지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풍자와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20세기 최고의 사전(辭典)’이라는 평을 듣는 책이다.
자신의 책 이름을 『악마의 사전』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비어스 스스로도 단어에 대한 자기 자신의 명명(命名) 행위가 ‘매우 악독한 짓’으로 생각됐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아무튼 그의 비판 정신과 정곡을 찌르는 유머는 싱싱하고 충격적이면서도 섬세하고 유쾌하다. 특히 정치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대표적인 것으로 ‘선거운동’ 같은 단어를 그는 “연단에 서서, 스미스는 빛의 아들인데 존스는 땅속의 지렁이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그 다음 바로 밑의 단어인 ‘선동자’는 더 배꼽을 잡는다. “벌레를 잡는답시고 이웃집 과일나무를 흔드는 정치가”라고 해 놓은 것이다. ‘후보자’에 대한 뜻풀이는 실로 점입가경으로,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친구의 권고로 공공의 복리를 위하여 자신의 개인적 이익의 희생을 억지로 동의한 인물. 이 말은 흰 것을 나타내는 ‘candid(솔직한)’ ‘candy(사탕과자)’와 같은 어원에서 유래했다. 이 말은 예전에는 아테네에서 지명 후보를 뽑는 방법으로 백구(白球)를 사용한 고사에 의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런데 후세의 저명한 언어학자 타운센드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사탕을 우물거리는 후보자의 습관이 전해온 것이라고 한다.”이다. 그의 풍자가 허리를 잡게 한다.
그러면 ‘정치’는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그는 정치를 ‘범죄 계급 중에서도 특히 저급한 족속들이 즐기는 생계 수단’인 동시에 ‘주의, 주장이라는 미명에 정체를 감추고 있는 이해관계의 충돌. 사리(私利)를 위해 공리(公利)를 운영하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정말이지 칼날처럼 예리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국회(congress)’에 대해서도 또한 지극히 신랄한데, ‘법률을 무효로 하기 위해 회합하는 사람들의 집합’이라고 해 놓았다. 돌아보면 실제로 얼마나 많은 법률을 의원들 자신들이 스스로 무효로 만들고 있는가. 마치 우리의 현실을 두고 하는 말처럼 들린다. 만약에 우리 위정자들이 이것을 읽었다면 심정이 어떠했을지도 자못 궁금하다.

‘타락’의 항목에 가서는 실로 그의 혜안에 감복하게 된다. ‘일반인 신분에서 정치 고위직으로 가는 도덕적·사회적 진보 단계의 하나’가 그것이다. 이 반어적(反語的) 표현 속에서 유독 ‘정치 고위직’을 빗댄 것으로 보아 우리와 그다지 떨어지지 않았던 그의 시대에도 정치가들의 타락상이 제일 꼴 보기가 싫었던 모양이다.

물론 ‘투표’의 의미 속에도 그의 뾰족한 송곳은 숨어 있다. 그는 투표를 ‘자기 자신을 바보로 만들고 자기 나라를 어렵게 만들고자 자유인이 행사하는 권리’라고 비꼬아 풀이한다.
우리야 단원제(單院制)이지만 상하 양원제인 미국의 하원에 대해 비어스는 ‘자신의 이익과 상충되지 않는다면 자기 선거구 주민의 이익을 지키는 신사’ 혹은 ‘현세에서는 비록 하원에서 정치에 관여하고 있지만, 내세에 가서도 하원(지옥)으로부터 승진(천국으로)의 싹수가 전혀 없는 인간’이라는 의원들이 듣기에 아주 냉소적이고 절망적인 정의를 내리고 있다.

정치가들에게 이런 독설과 풍자가 천만 유쾌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 세기 전쯤에 세상을 떠난 비어스나 지금의 우리들이나 정치에 대해 느끼는 것은 조금도 달라진 점이 없다는 것이다. 쓸데없이 말만 요란하고, 법을 지키지 않고, 대다수가 시위소찬(尸位素餐)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6월 선거 역시도 여전히 비어스의 ‘악마의 사전’ 뜻풀이를 벗어나지 못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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