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식 시인·인천문협회장

 출판기념회(出版記念會)라고 하면 흔히 문인 작가들의 작품집이나 대학 교수들의 연구 논문집 출간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자리라고 생각된다. 글을 쓰고 이를 엮어 책으로 출간하는 일이 대체로 이들 문인, 교수 학자들의 직업이요, 직무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또 전에는 이들 부류 외에는 책을 내는 일이 그다지 흔치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작물이 처음 출판되었을 때에 그것을 축하하기 위해 베푸는 모임’인 출판기념회 풍조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자세하지는 않지만, 동아일보 1923년 1월 11일자에 ‘『조선문명사(朝鮮文明史)』라는 책을 낸 학자 안확(安廓)씨의 저작을 축하하는 동시에 장래 조선의 학자를 추장(推奬)하는 의미로 재작(再昨) 9일, 서울 서대문에서 유지 십여 명이 모여 안확 씨를 청해 환담을 교환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이 기사는 “저작품(著作品)에 대한 축하는 조선에서는 이번이 처음이요, 그 전에도 『불교통사(佛敎通史)』 등 여러 가지 축하할 만한 저작이 있었으나 그 당시에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 못하였으나 이번에 축하를 하게 된 것은 시대가 그만치 변천된 것이라 하겠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저작품에 대한 축하는 조선에서는 이번이 처음이요,”라는 구절로 미루어 일제는 저희 땅에서 이미 이런 행사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이 된다. 아무튼 동아일보의 기록대로라면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출판기념회인데, 이를 계기로 우리에게도 출판기념회 행사가 보편화의 길을 걷게 된 것 같다. 이후 시인, 작가들의 출판기념회가 흔하게 잇따르는 것이다. 
『조선문명사(朝鮮文明史)』에 이어 1928년 6월 조명희(趙明熙)의 『낙동강』, 이기영(李箕永)의 『민촌(民村)』 두 창작집 출판기념회가 ‘서울 시외 청량사(淸凉寺)’에서 열린다는 기사가 보이고, 1930년에는 박영희(朴英熙)의 『소설 평론집』 출판기념회가 작가 김기진(金基鎭), 안막(安漠) 송영(宋影) 등의 발의에 의해 개최된다. 재미있는 것은 ‘박영희나 김기진의 책 출판이 기쁜 사람은 누구나 회비 50전에 참석이 가능하다’는 기사 내용이다.

1931년 5월에는 이선근(李瑄根)의 『조선최근세사(朝鮮近世史)』 출판기념회가 당대 최고 인사인 안재홍(安在鴻,), 장지연(張志淵) 같은 이들의 발기에 의해서 열린다. 이 같은 초창기 출판기념회 행사를 거쳐 카프 그룹의 시인선집, 작가 7인집 출판기념회가 열리고, 그 뒤로 이은상(李殷相), 김동인(金東仁), 양주동(梁柱東), 윤석중(尹石重), 백남운(白南雲), 모윤숙(毛允淑), 이하윤(異河潤), 이여성(李如星), 김세용(金世鎔), 이훈구(李勳求), 정지용(鄭芝鎔), 백석(白石) 등 당시 시인, 작가, 학자들의 출판기념회가 유행처럼 봇물을 이룬다.

마침내 이런 유행 풍조에 대해 작가 엄흥섭(嚴興燮)이 따끔하게 침을 놓는다. 그는 “그것이 다만 유행적 색채를 띤 오직 저널리즘의 한 도구로써 사용되게 될 때 우리는 심히 한심을 금치 못한다.”며 “그 회합엔 반드시 작자로 보거나 예술적 입장으로 보거나 꼭 참석했어야 할 인연 깊은 역사적 의의를 가진 사람으로서 참석치 않고, 다만 사교적 의미에서 어떤 이해관계로 마지못해서 참석한 사람이 많은 것을 볼 땐 적이 고소(苦笑)가 튀어나온다.”고 꼬집었다.
그가 꼬집은 것은 그래도 전문 문인들에 대한 경우이고, 그 의도도 문학의 질적 향상을 위한 경종이었다. 이런 반성 속에서 출판기념회의 전통은 근래까지 이어져 왔고, 그 주인공은 역시 대부분 문인이나 교수, 학자들이었다.
그런데 요 근래 출판기념회는 문인 학자들이 아니라 정치지망생, 선거 출마예상자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들이라고 해서 저서를 가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평소 깊은 연구와 사색을 통해 얻어진 성과를 열 번이고 책으로 펴낼 것을 권장한다.
줄지어, 그리고 스스로, 약속이나 한 듯 너도 나도 열고 있는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 선거를 앞둔 정치가, 선거 출마 예상자들의 출판기념회는 엄흥섭의 말대로 ‘저널리즘적 유행’이요, ‘이해관계로 축하객이 마지못해 참석해야 하는 고소(苦笑)거리’이다. 더구나 뜬소문이겠지만 원고 대필자가 씨가 말랐다는 이야기까지 있으니…….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여는 것이 정치인들의 행보용이라거나, 선거 출마의 도구가 된다는 것은 실로 우습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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