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진삼 객원논설위원/건축비평가·광운대 겸임교수

 또다시 선거철이다. 간간히 예비후보자 얼굴을 박은 명함이 길거리에 나뒹굴고 있음을 본다. 발끝에 차이는 지역 내 인사들의 소망이 시민들의 표심과 얼마나 지근거리에 있는지 알 방도는 없지만 주기적으로 부침하는 저들의 존재를 확인할 때마다 참으로 힘든 일에 투신하는 용기 많은 사람들이란 생각을 가져보곤 한다. 소위 정치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정치꾼’이기보다는 ‘정치인’으로 대우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의식 이면에는 매번 지역을 위해 제대로 일할 인물을 찾아내는 선택의 즐거움을 맛보기 위함이 크다.
실제로 선택의 즐거움을 구가하는 시민들이 얼마나 될까 싶은데 지역마다 각양각색의 이슈들이 존재하고 있고, 각각의 이슈를 둘러싸고 있는 계층 간의 복잡 미묘한 이권과 양심의 사이에서 초지일관 정의를 사수할 수 있는 정치인을 만난다는 것이 생각처럼 용이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안이 크든 작든, 목소리가 크건 작건 양 갈래 이상으로 나눠지는 민심의 동요는 늘상 있는 것이고, 정의는 언제나 소수의 약자 입장에서 치부되는 도구로 전락해 버리기 일쑤다. 그런 일반시민의 속성을 꿰뚫고 있는 정치인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며, 상황별 말 바꾸기의 전략을 통해 국면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정치꾼으로 끊임없이 변신하는 것이다.

기초의원으로부터 광역단체장에 이르기까지 쏟아낼 공약들은 대개가 지역의 문제를 응시하고 바람직한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일련의 프로그램을 담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사실상 내용적으로는 후보자 고하간 차이를 발견해내는 것이 어려울 만큼 유사한 것이 대부분인지라 유권자들의 특별한 관심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결국은 평소 미디어에의 노출빈도 또는 후보 개인의 인적 네트워크의 크기가 당락을 좌우하는 형국인지라 대개의 경우 후보자들은 정책대결의 양상보다는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며, 치적을 과시하고, 종국엔 사람 머리수 싸움에 진력을 다하기 마련이다.

각급 시민단체에서는 이 같은 일반인들의 심리를 간파해 지역 내 대표 지식인들의 눈과 머리를 빌려 각 분야의 정책 의제를 설정하고, 후보자들에게 제시함으로써 정책의 구체성을 주문하고 실천 능력을 검증하는 등 저들을 유인하는 방책(매니페스토 운동)을 마련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지역사회에서는 그 당위성에도 정작 시민들의 관심이 투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절반의 효과를 보이고 있다 할 것이다. 게다가 후보자 진영에서조차 지역 내 엘리트 계급에 의한 토끼몰이 식 접근법에 대해 불만을 표하며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등 개선의 여지를 많이 안고 있다. 그러나 대의정치의 구도 안에서 시민들의 의사를 광범하게 채집해 후보자들에게 전달하고, 그것의 정책적 해법을 통해 후보자의 자질과 정치적 파워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이 같은 시스템은 지역 연고주의라는 고질적인 한국정치의 병인을 바로잡을 수 있는 의미로운 것임에 분명하다. 문제는 이러한 시스템 속으로 무관심을 즐기는 시민들을 어떻게 불러내느냐의 방책일 것이다.

각급 단체장의 선거는 그나마 지역과 중앙의 방송과 신문미디어를 통해 정책과 해법의 구체적인 문제의식을 토대로 시민들이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선 다소 유리한 면이 있는데 반해 지역구의원 및 시의원 대부분은 당락이 결정된 선거 후에도 당선자가 누구며, 그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해낼 수 있는 인물인가를 알고 있는 유권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기초의원들은 매번 탄생하고 지역 내 현안을 쥐락펴락 하는 시민의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면 유권자들의 선거를 향한 의식 제고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백번 강조해도 모자람이 있다.

그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시민 다수가 선택의 기회를 갖고 있는 기초단체장 및 광역단체장에 대한 유권자로서의 치밀한 공부가 전제되지 않는 것과 더해 투표에 불참하는 것으로 시민의 권리를 공중분해시키는 퇴행이 거듭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천은 매번 투표율 면에서 전국 광역시 중 하위를 면치 못해온 최악의 도시로 지목되어 왔는데 문제는 그렇게 선택된 단체장이 반(反)시민적 판단과 결정 권한의 남용을 일삼는다 해도 선택의 기회를 포기한 시민다수가 존재하는 한 불편한 리더십은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특히 2, 30대 젊은 유권자 층의 투표참여는 지역사회의 10년 뒤 향방을 가늠하는 지렛대 역할을 한다는 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좋기로는 이들 세대가 스스로 투표소로 나와 주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조금이라도 현재의 지역상황에 문제의식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가정의 선배 세대들이 솔선해 투표에 참여하고, 독려함으로써 의식적으로나마 세상을 바꾸는 힘이 함께 참여하는 가족문화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공유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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