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인천시가 중구 소재 ‘만국공원(자유공원)의 창조적 복원 사업’을 펼친다고 하면서 내세운 논
▲ 김윤식/시인·인천문협 회장
리가 곧 ‘인천의 정체성 혼란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인천을 표상할 도시 경관의 부재, 상징적 장소의 결여’라는 점을 들었던 적이 있다. ‘창조적 복원’이라는 용어 자체가 이미 의미상 모순을 안고 있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인천의 정체성 혼란의 한 요인이 이른바 인천을 표상할 건물 하나 없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을 편 것이다.
실제 인천은 나라 전체를 놓고 볼 때, 역사적으로 변방이나 다름이 없던 지역이어서 기억할 만한 중요 사적이나 건물이 있지를 않았다. 그러니까 오늘날 이야기하는 도시 경관은 있을 수가 없는, 아주 쓸쓸한 어촌·촌락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도시 경관이라는 말은 개항 후 구미인(歐美人)들이 지은 양관(洋館)을 포함해 일인·청인들의 건물이 들어선 후에나 성립될(?) 것이다.     
청인들의 건물은 여럿 원형을 잃거나 멸실되었지만 현재 차이나타운에 몇 채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양관풍의 일인 건조 건물로는 일본 제일은행 등 몇 채가 남아 있는 정도다. 공교롭게도 양인(洋人)들에 의해 지어진 자유공원 정상의 세창양행 숙사와 인천각이라고 일컫던 존스턴별장은 전쟁 통에 파괴가 되어 버리고 말았고, 제물포구락부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여기에 그 파괴된 두 양관을, ‘인천의 정체성의 혼란을 막기 위해 창조적으로 복원’하겠다는 것이 당시의 논리였다.
많은 인사들이 논리의 모순과 부당함을 지적했고, 동시에 이 같은 건물 한두 채를 복원해 되살려 놓는 것으로 인천의 정체성이 확고해 진다는 것은 어뷸성설임을 들었다. 물론 이 건물들이 저들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한 침탈 수단으로 지어진 것이기는 해도, 건물이 가지는 역사성이나 건축학적, 미적 가치를 따져 복원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것은 또한 우리 후대에 대한 역사 교육 현장으로서, 관광 자원으로서 필요하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실제로는 이 같은 복원 논리에, 행동에 정면으로 반대되고 모순되는 일이 비일비재 우리 인천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복원을 외치는 한편에서는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도처에서 옛 건물의 철거와 파괴가 최고의 선(善)처럼 벌어져 온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인천에서 사라진 역사적 건물들이, 변해버린 마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아니, 전 시가지가 ‘인천서 죽은 귀신은 찾아오지도 못할 정도로’ 낯설게 부수어져 밀려난 것이다. 그러다가는 얼마 후 다시 복원하자고 나서고…….
해묵은 만국공원 복원 논란을 다시 여기서 상기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임을 말한다. 인천사람치고 자기가 생장한 옛 마을, 자기 집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다못해 자기가 다니던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어디 건물 하나 온전히 남아 있어 오가며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조차도 거의 없을 것이다. 학교의 옛 건물은 안전이라는, 편리라는 이름으로 모조리 때려 부수었고 시내의 옛 마을, 옛 주택은 도처에서 부는 개발, 개발, 개발 바람을 타고 파헤쳐져 사라지고…….
정체성은 그 지역 주민들이 누대에 걸쳐 전해오는 정신문화적 맥락의 공유일진대 이렇게 옛것을 싹쓸이하듯 없앤 오유(烏有) 위에 무슨 역사의식이 있고 정체성이 있을 것인가. 혹 새로 지어 복원한다고 해서 과연 그 땀과 눈물 얼룩진 과거의 심정(心情)까지 복원이 될 것인가.
도화동 인천대학 자리 일대가 다시 거대한 삽날 아래 부서지고 파헤쳐지리라 한다. 대학이 떠난 빈 건물을 없애고 개발할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는 논리다. 그 건물들이 역사적으로, 건축학적으로, 미적으로, 도시 계획적으로 전혀 가치를 가지지 못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어언 반세기에 달하는 세월 동안, 그 건물들은 인천대 출신들은 물론이거니와 좋든 궂든 인천사람들의 심정에도 들어와 앉은 것이다.
역사는, 정체성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리고 이 역사와 정체성은 분명 현실의 실용성을 뛰어넘는다. 모조리 없앨 것이 아니라 한두 채라도 남겨 ‘상징적으로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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