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고등)

메아리

인천 인일여고
2학년 1반 우마루내

“사방이 막혀있는 방에 사람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점점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사람들을 깨우시겠습니까? 여러분이 깨우지 않는다면 이 사람들은 조용히 잠들어 죽어갈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만일 깨운다면 이 사람들은 아마 엄청난 충격을 받고 큰 고생을 해야 할 겁니다. 이 사람들은 여러분을 원망할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모르게 놔두지, 왜 깨웠느냐고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 여러분은 이 사람들을 깨울 수 있습니까? 갈등이 되시죠? 그런데 만일, 이 사람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스스로 깨어나 벽을 두드린다면, 여러분은 어떻게든 그 사람이 벽을 허물어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이걸 거절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아마 여기 모인 우리들 중에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 나를 포함한 고등학생 몇, 대학생 여럿은 북한에 방송을 송출하겠다고 모인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방에 갇힌 사람을 직접 흔들어 깨우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 방 앞을 서성이며 기회를 보아 소리라도 내려는 사람들이었다. 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하려는 방송은, 세계를 한 바퀴 도는 방송이어서 음질이 굉장히 떨어진다. 그러나 대신 어느 곳에서든 주파수만 맞추면 들을 수 있다. 북한 내에서 젊은 층들이 몰래 갖고 있는 라디오로도 들을 수 있는 거다. 한참 설명을 하던 강사는 ‘유리병’ 이라는 노래를 틀었다. 초반에 말했던 사방이 막힌 방을 유리병에 비유한 노래다. 강사는 그 노래가 끝나자 호소하듯 말했다. 만일 여러분이 그 유리병 속의 사람들과 눈이 마주친다면, 정말 단 한 사람이라도 눈이 마주친다면, 그 사람을 외면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단 한 사람이라도? 네, 그래야지요. 민족과 나라를 거론하지 않더라고 적어도 그게 인간적인 거 아닙니까. 인간 대 인간으로 밀이에요.
대북 방송의 의미에 관한 강연이 끝나고, 우리는 방송 아이템을 기획했다. 통일하자, 우리는 하나다라는 진부한 말들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그냥 우리들의 이야기였다. 민족이니 통일이니 하는 말들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수업받듯, 그것이 형식이고 겉치레라면 그건 틀린 거다. 대북에 송출할 방송을 만들겠다고 모인 우리들은, 적어도 진심이었다.

대학이야기, 고등학교 이야기, 남녀의 차이, 영화, 노래…. 우리가 내높은 기획안은 대체로 그러했다. 그러고는 뒷풀이에 갔다. 서로 사이다가 든 잔을 부딪치며 우리는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의 목소리가 세계를 한 바퀴 돌면서, 넓은 곳으로 그렇게 퍼져 나가면서, 첫 소리는 묻히더라도 끝 소리는 희미하게나마 돌아올 거라고. 우리가 만드는 방송은 사소하고 일상적인 이야기지만, 산에 올라갔을 때도 바보, 멍청이 등 가벼운 말들을 소리치지 않는가. 이야기가 얼마나 의미 있고 대단한지는 중요하지않다. 다만 우리에게 자유롭게 소리지르고 그것이 반드시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 있다면, 그런 메아리가 언제나 남북한 사이에 존재할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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