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포격 도발로 아비규환의 현장이 된 연평도에서 불안에 떨던 주민 300여 명이 24일 인천에 무사히 도착했다.

연평도 주민 346명은 이날 오후 해양경찰서 경비함정 312함(174명)과 503함(172명)에 각각 나눠 타고 해경전용부두에 도착했다.

북한의 포격 직후 지하벙커로 피해 공포에 떨며 촛불에 의지해 하룻밤을 지새운 주민들은 인천에 도착하자 옹진군청에서 준비한 버스 9대를 이용해 친·인척이 있는 연고지로 떠나거나 임시 숙소로 이동했다.

황연옥(83)할머니는 “‘쾅’ 소리와 함께 산에 불이 나기 시작해 갈피를 못 잡고 밖에서 뛰어다니다 주민들과 함께 지하 방공호로 대피했다”며 “너무 놀라 할 말이 없다”고 끔찍했던 상황을 전하며 눈물을 흘렸다.

황 할머니의 아들 반장환(44)씨는 “어제부터 연락이 안 돼 불안에 떨다 새벽 5시에 연락을 받고 모시러 왔다”며 “어머니가 무사하시지만 일단 집으로 모셔 편히 쉬게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황 할머니처럼 연고가 있는 주민과 달리 인천에 연고지가 없는 사람들은 당장 머무를 곳이 없어 임시 숙소인 시내 모 찜질방에서 정부의 대책을 기다리고 있다.

연평초교 6학년 딸과 피신한 40대 여성은 “밭일을 하다 포탄이 떨어지고 집이 불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다 동네 주민들과 정신없이 방공호로 대피해 밤새 무서움과 추위에 떨었다”며 “육지에 연고도 없어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고 눈물을 흘렸다.

연평도 주민 일부는 인천 도착 직후 옹진군청을 찾아가 피해주민에 대한 정부 차원에서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연평도에서 17년간 농사를 짓고 살던 김성순(69)씨는 “마당에서 김장 준비를 하다 땅이 흔들리고 옆집에 포탄이 떨어지면서 우리 집도 불이 옮겨 탔다”며 “돈 한 푼 없이 옷만 주어입고 인천으로 대피했지만 다시는 연평도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니 정부에서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말했다.

5대째 연평도에 살아온 50대 여성은 “연평도에서 속옷이라도 구할 수 있었으면 나오지 않았을 텐데 옷이라도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나왔다”며 “대대로 살아온 곳을 버리고 나와 있을 곳도 없고 살 수도 없어 다시 돌아가야 하는 데 막막하기만 하다”고 하소연했다.

연고지가 있는 주민이나 없는 주민 모두 북한의 도발로 한순간에 평생을 일궈 온 터전을 잃어버렸고, 연평도는 이들에게 더는 평온하고 살기 좋은 삶의 터전이 아니었다.

한편, 이날 인천해역방위사령부는 해군 공기부양정 2척을 연평도로 보내 추가로 주민과 전역병, 군 가족 등 197명을 태우고 오후 3시께 인천해역방위사령부 부두로 도착했다.
해군과 해병대는 “주민피해 복구 및 부대전투력 복원을 위해 최선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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