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 303의 11에 자리잡은 세중박물관은 돌 전문 사립 박물관이다. 지난 2000년 7월 1일 옛 돌 조각을 보면서 선인들의 숨결을 느끼고 역사 체험을 통해 문화적 삶의 질을 향상시킬 목적으로 설립됐다.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숲 곳곳에 옛 석조각품을 배치,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자연의 활력과 문화의 향기를 함께 전달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여 년간 수집해 온 1만여 점의 다양한 옛 석조각품들을 전시함으로써 선조의 문화유산 가치를 경험하는 역사 체험의 장으로서의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옛 돌들이 사계절 변화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전을 열고 있으며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돌 관련 창작미술 공모전을 열고 있다. 또 옛 석조작품을 지역별·조각 기법별 등 다양한 방법으로 분류·연구해 학술지 발행과 세미나를 열고 있다.

면적은 1만7천여㎡로 야외전시관 13개와 실내전시관 1개로 구성돼 있다. 전시관은 각각 장승, 벅수, 사대부 묘, 석인, 지방, 제주도, 석수, 생활유물, 동자, 민속, 불교 등으로 구분돼 있으며 일본에 반출됐다가 회

   
 
수한 유물을 전시하는 특별전시관이 있다.

세중박물관은 국내 최초의 돌 박물관으로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많은 유물을 수집해 전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 조상들의 삶을 살펴볼 수 있다.

◇석조미술의 보존
우리나라 역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주요 미술품은 대부분이 석조미술이다. 그러나 이 귀중한 문화유산이 도시화·산업화 속에 파괴되고 외국으로 밀반출되는 등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이런 탓에 세중박물관은 1만여 점의 다양한 석조각품을 체계적으로 연구·보존해 석조각 작품이 지니고 있는 민간 예술로서의 작품성을 발현시키고 있다. 또 석조각품들을 실내박물관이 아닌 본래 상태인 자연 속에 전시함으로써 석조각이 지닌 소박한 아름다움을 전달하고 있다.

◇다양한 전시유물
세중박물관은 13개의 야외전시관과 1개의 실내전시관 등 모두 14개의 전시관으로 이뤄져 있다. 소장품은 1만여 점으로 전국에서 발굴한 다양한 종류의 석조각품을 소장하고 있다.

   
 

왕릉과 사대부가의 묘에서 망자의 혼을 지키고 위안하던 문·무인석과 그 앞에서 희화적인 얼굴로 왕릉을 보호하던 석수, 마을의 수호신으로서 마을에 들어오는 악귀와 외적을 막아 주던 장승과 벅수, 높이 올라서 먼 곳까지 마을의 안위를 살피던 솟대, 돌아오지 않은 남편을 기다리다 그대로 돌이 됐다는 망부석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또 귀여운 모습으로 지나던 나그네의 발길을 붙드는 동자석, 제주의 상징이 된 돌하르방, 마을의 효자를 표창하고 기리는 효자석, 그 밖에 석탑, 석등 등의 불교 유물과 연자방아, 맷돌, 다듬이돌, 우물돌, 돌솥 등 선조들의 생활도구 유물까지 다양한 전시유물을 관람할 수 있다.

▲ 이종철 전 국립민속박물관 관장

남녘 마을의 동네 어귀나 뒷고샅에는 아름드리 팽나무와 둥구나무·정자나무가 ‘당산나무’라고 해서 마을 제사 때 신앙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동네를 지켜 주는 수호신으로 당산나무를 받들어 그 주변에는 정성스레 쌓은 돌탑이나 길고 커다란 선돌을 곧추세운 입석 또는 장승을 세워 두기도 한다. 당산나무 아래에는 마당바위 같은 엄청난 돌을 배치해 정월대보름 마을 젯날 제상, 농한가에는 회의장 휴식터 의자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당산나무 아래에는 60~80㎏의 들돌(擧石)을 모셔 둬 마을의 청소년이 어른으로 인정받으려면 이 돌을 등에 걸머지고 나무 주변을 한두 바퀴 돌거나 들돌을 어깨 앞에서 등뒤로 움직일 힘을 보이면 청소년의 아버지가 ‘써래술’, ‘전세’라고 해 동네 어른과 청년에게 술과 음식을 한턱 냄으로써 어른 품삯을 받게 되는 성년식의 여유로운 미풍도 있었다.
옛 어른들은 흙과 막돌을 섞어 사람 키보다 조금 낮은 담을 만들고 싸리문을 달아 문을 만든다. 제주에서는 정주목이라 해서 구멍 숭숭 뚫린 지석에 동그란 구멍을 세 개 만들어 주인의 외출 시간을 ‘잠깐 후 귀가’, ‘2~3일 후’, ‘열흘 가량’이라는 묵시적 알림을 정낭을 통해 행한다. 김영랑의 목가적인 시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돌담으로 굽이진 골목길 사이 빨간 홍시의 감나무 가지가 하늘을 가린다. 시골 담벼락에서 느끼는 정겨움과 소박한 아름다움은 나그네의 옷자락을 잡아끈다. 어머니들의 소식과 맛을 교환하는 인정의 비상 연락망은 뒤란의 울타리나 돌담이다. 고샅을 지나는 나그네가 고개만 기웃하여도 울 안의 동정을 볼 수 있는 높이다. 천혜의 자연 속에서 생태환경의 부분 요소로 살아 온 조상들은 그들의 살림집 지붕을 돌로 잇거나 벽채를 흙과 돌과 짚을 섞어 만들었다. 달고(달궁) 등을 써서 지반을 견고하게 다지는 지경소리인 “얼럴렁 상사듸야, 어여루 지경이야”하며 돌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새 집터를 다진다. 호박 주춧돌이나 덤벙주초를 이용해 기둥을 올리고 초가삼간에 행복을 실어 낮의 깨어 있는 농사 시간은 물론 하루를 마감하는 밤의 잠자리까지 흙돌집의 숨고르기와 함께 호흡하며 살았다.
조상들은 기거하는 방을 온돌로, 제사나 휴식을 위해서는 마루를 깔아 이용했다. 신석기 시대 평안북도 공귀리 주거지에서 보였던 온들은 수천 년 동안 유지돼 왔다. 밥과 국을 지을 때 화덕에 땐 불의 열을 그대로 이용해 방을 데우는 구들은 적당한 두께의 돌을 깔아 황토 마감을 하여 뜨거운 열을 오랫동안 간직했다. 온돌은 8시간 이상 천천히 그 열을 발산하는데, 흙과 돌 속에 바이오리듬이 있다 해서 최고의 난방시스템으로 오늘날 세계적인 재평가를 받고 있다.
집 앞마당에는 조그만 남새밭 채전을 만들어 푸성귀를 심어 싱싱한 비타민을 공급받고, 밭 옆의 두엄자리에 재와 음식쓰레기를 섞어 밭의 힘을 튼튼하게 해 주는 퇴비를 만들어 자연의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생활화했다.
앞마당 우물 속에도 작은 돌들을 사람 서너 길 되게 둥글게 쌓아 올려 우물 안쪽을 만든다. 맨 위쪽은 넓적하고 커다란 돌 몇 개로 마감하거나 우물 방틀을 만들어 사용하기 편리하게 만들었다. 높은 곳에서 끌
   
 
어들인 물을 대나무 관으로 연결해 물구덕이나 물확에 정수시켜 식음료로 사용했고, 다시 다른 확에 담아 허드렛물로 빨래를 하며 동네 아낙들이 우물가에서 마을 송사를 해결하고 세상 이야기꽃을 피웠다.
정월의 세시에는 우물에 음식을 차려 놓고 우물신에게 샘물이 잘 나오고 물맛을 좋게 해 달라고 빌며 메구를 친다. 볕이 잘 드는 뒷마당의 부엌 가까운 동쪽 양지터에 큰 돌, 작은 돌, 넓적한 돌, 뾰족한 돌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균형에 맞추고 다듬어서 큰 살림의 밑천인 장독대를 만든다.
장독간에는 어머니가 바쁜 부엌의 일과 속에서나마 계절을 느끼도록 봄·여름·가을 꽃씨를 뿌려 두고, 장독 뒤켠에는 터주와 업과 칠성신을 모셔서 작은 정성을 절기마다 올린다. 금줄이 난 버선을 거꾸로 매달아 부정을 방지하며, 시어머니의 장맛을 지키려 노력했다. 장독대에는 종가의 맛깔스런 음식을 잉태케 하는 간장, 된장, 담뿍장, 콩항아리, 장아찌, 좌반, 깨, 고추장이 대를 물리어 익어 가고 장아찌, 젓갈, 동치미의 담백한 맛이 시집살이처럼 새콤한 악센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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