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펜싱 사상 첫 금메달을 노리던 남현희(31·성남시청)가 4년 전 베이징에서의 아쉬움을 그대로 재현하고 말았다.

 남현희는 2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엑셀 런던 사우스 아레나1’에서 열린 펜싱 여자 플뢰레 준결승과 3~4위전에서 엘리사 디 프란시스카(30·이탈리아)와 발렌티나 베잘리(38·이탈리아)에게 연달아 패해 끝내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특히 아쉬운 것은 두 번의 패배가 4년 전 베이징 올림픽 결승에서의 패배 장면과 매우 비슷했다는 점이다.

 당시 여자 플뢰레 개인전 결승에서 남현희는 4-4로 맞선 3세트에서 1분을  남겨두고 재빠른 찌르기 공격으로 점수를 뽑아 승기를 잡았다.

 그러나 남현희는 경기를 뒤집겠다고 달려드는 베잘리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며 경기 종료 30여 초를 남겨두고 동점을 내줬다.

 그리고 모두가 머릿속에 연장전을 그리고 있던 종료 4초 전, 번개같이 칼을 뻗은 베잘리의 정직한 찌르기를 막아내지 못해 5-6으로 역전까지 허용했다.

 2초를 남겨두고 마지막 칼날을 베잘리에 겨눴지만 칼끝이 플뢰레의 유효 면인 몸통을 빗나가 하반신을 찌르는 바람에 금메달은 베잘리의 손에 넘어갔다.

 값진 은메달이었지만 워낙 극적으로 금메달을 놓친 터라 남현희는 4년 동안 칼을 갈며 ‘금빛 찌르기’를 준비했지만 얄궂은 운명처럼 똑같은 경기가 재현됐다.
 남현희는 준결승에서 3세트 초반 9-5까지 달아나 결승 진출을 눈앞에 둔 듯했으나 맹렬한 반격에 나선 디 프란시스카의 공세에 밀려 막판에 10-10 동점을 내주고 연장에 돌입했다.

 서든데스로 진행된 연장전에서 두 선수는 동시에 ‘마지막 공격’을 벌였지만 남현희의 검 끝이 어깨 쪽으로 살짝 벗어난 탓에 디 프란시스카의 유효타가 선언돼 승리를 내줬다.

 4년 전 결승에서 맞붙었던 베잘리와의 3~4위전 승부도 똑같았다.

 남현희는 경기 종료 22초를 남기고 베잘리의 가슴 한복판에 검 끝을 찔러 12-8까지 앞서 베이징에서의 설욕에 성공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때부터 적극적인 반격에 나선 베잘리의 공격에 계속 뒤로 밀렸다.

 베잘리는 꾸준히 투슈(유효타)를 얻어내 남현희를 뒤쫓더니 결국 종료 1초를 남기고 동점을 만들었다.

 연장전에서 남현희와 베잘리는 다시 동시 공격을 펼쳤으나 이번에도 승리의 여신은 남현희를 외면했다.

 베잘리의 보호 마스크와 피스트에는 득점을 의미하는 녹색 불이 들어왔으나, 남현희의 피스트 주변에는 득점 실패를 뜻하는 흰색 불이 들어왔다.

 베이징에서와 마찬가지로 남현희는 아쉬움을 곱씹어야 했다.

 반면 베잘리는 눈물을 흘리며 피스트에 입을 맞추고 승리의 감격을 즐겼다.

 경기를 마친 남현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굳은 표정으로 숙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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