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최대명절 추석이다. 한 해 농사를 거둔다. 벼를 찧고, 고추·깨·콩도 훑는다. 사과·배·감을 따고, 송편을 빚고, 나물을 무친다. 분명 가을 한가위다. 세월이 멈춰선 듯 고즈넉한 고향을 떠올리고 있노라니 불현듯 어릴 적 고향 마을회관 거울 위에 붙어있던 ‘밀레의 만종’ 그림이 떠오른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밀레의 그림을 좋아했다. 「이삭줍기」 그림도 좋았고, 「씨를 뿌리는 사람」 그림도 좋았다. 아울러 밀레의 「만종(晩鐘)」은 지금까지도 가슴속에 행복의 이미지로 아로새겨 주고 있다.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이미지가 가슴 속에 그대로 되살아나는 것 같다. 그 소박성이 좋고, 진실성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더랬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난 밀레는 일생 동안 일하는 농부들을 그의 화제로 삼았다. 마을 사람들이 푼푼이 모아 준 노자로 파리에 가서 그림 공부를 했고, 고향에 돌아와서는 농사를 지으면서 그림을 그렸다. 살기 위한 괴로운 노동을 그리려고 한 밀레의 자세는 농촌 인구가 도시에 많이 유입해 농촌이 황폐해지는 시대를 반영했다. 「이삭줍기」, 「만종」, 「양치는 소녀」, 「씨를 뿌리는 사람」 등의 대표적인 작품만 보아도 농촌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해냈는가를 알 수가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농촌지킴이’이었던 밀레의 슬픈 사연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과 교훈을 던져준다. 당시 농촌의 아름다운 전원과 농부들을 그렸지만 당시에는 그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밀레는 화려한 거실에 걸리는 그림이 아닌 살아 있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이러한 밀레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친구인 철학자 루소와 아내뿐이었다,
밀레가 「접목을 하고 있는 농부」를 그리고 있을 때였다. 그림 한 점 팔지 못한 밀레는 불기 없는 냉방에서 그림을 그렸으며 아내와 아이들은 며칠째 굶고 있었다. 식량과 땔감이 떨어진 것이다. 그림을 완성한 밀레가 기쁜 얼굴로 가족들을 돌아보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핼쓱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밀레는 너무나 미안한 마음에 목이 메었다. ‘어서 빨리 이 그림을 팔아서 양식을 구해와야지.’
밀레가 주섬주섬 웃을 입고 있는데 친구인 루소가 찾아왔다, ‘여보게 밀레, 내가 기쁜 소식을 가져왔네. 드디어 자네 그림을 이해하고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단 말일세.’ 루소는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에게 돈을 주며 대신 그림을 골라 오라고 부탁했네 자, 여기 돈 받게나.’ 루소는 두툼한 지폐 뭉치를 밀레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그리고 밀레가 막 끝낸 그림 「접목을 하고 있는 농부」를 들고 돌아갔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다. 밀레가 루소의 집을 방문했다. 루소는 마침 외출 중이어서 밀레는 루소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한쪽 벽에 낯익은 그림 한 점이 걸려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그림을 본 밀레는 깜짝 놀랐다. 그것은 몇 년 전에 밀레가 그린 「접목을 하고 있는 농부」였던 것이다. 루소의 따뜻한 마음을 안 밀레의 가슴은 뭉클해졌다. 그의 눈엔 눈물이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우리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농촌을 지켜야 하는 사정이 거기에 있다. 농업은 생명이다. 지금 우리 농촌은 젊은 세대가 도시로 빠져나가 농촌의 역할이 많이 퇴색되긴 했지만, 다행히 고향 농촌을 지키고 있는 부모님들이 계시기 때문에 명절 때만 되면 민족의 대이동이 일어나는 풍습이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 농촌은 사람을 기다린다. 그리고 고향의 흙은 우리들 생명의 젖줄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밀레의 「만종」은 ‘경종’을 울려 주고 있는 것이다. 보지 않았던가. 석양을 등지고 손을 모으고 기도하면서 서 있는 두 사람을, 그 기도는 농촌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농부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그림에 담은 밀레의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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