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업을 위해 참정권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천시 남동구의 한 병원에서 조리사로 근무하는 박모(55·여)씨는 하루 13시간을 주방에서 씨름한다. 주말과 휴일 가릴 것 없이 오전 6시 출근해 오후 7시 퇴근할 때까지 13시간 동안 200여 명분의 밥 짓기와 설거지를 반복하다 보면 몸은 이내 천근만근이고, 잠시 짬을 내 다른 일을 할 시간도 없다.

그는 지난 2008년 조리사 일을 시작하면서 두 번의 국회의원 선거와 한 번의 지방선거를 치렀지만 투표는 남의 일이 된 지 오래다. 환자들에게 제공할 밥 짓기를 거를 수 없는 점은 이해하지만 조리사들의 투표가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는 병원 측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박 씨는 “조리사들이 투표할 수 있도록 그날만이라도 인력을 충원해 달라고 요구하지만 병원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며 “이번엔 뽑고 싶은 후보가 있지만 투표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인천시 연수구에서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서모(66)씨는 24시간씩 2교대로 근무한다. 따라서 17일 근무한 서 씨는 하루를 쉬고 19일부터 24시간을 꼬박 일해야 해 투표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관리소장에게 19일 잠시 투표를 하고 오겠다고 말했지만 대체인력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불허했다. 퇴역군인 출신인 그는 이런 근무환경이 생소하기만 하다.

서 씨는 “훈련 중인 군인도 투표를 할 수 있는데 사회에서 투표가 불가능한 상황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관리자들의 의식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건설노동자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건설경기가 오랜 침체기에 빠진 데다 그나마 비수기인 겨울에는 일거리가 많지 않은 상황에 하루 일당을 포기할 수 없는 이들은 투표일이라도 일터로 나갈 수밖에 없다. 일거리를 얻으려면 늦어도 오전 5시 30분까지 인력사무소에 도착해야 하고 일이 끝나는 시간은 오후 6시라 투표는 언감생심이다.

인천시 서구에서 인력사무소를 운영하는 강모(51)씨는 “대선 투표일에도 일하는 현장이 많아 사무소를 열 수밖에 없다”며 “간혹 투표를 배려해 주는 현장이 있지만, 대부분의 건설노동자들은 투표를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근로자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도 있다.

인천공항에서 3교대로 근무하는 순환버스 운전기사들은 출근시간 때문에 자칫 투표를 포기할 수 있었으나 최근 업체의 배려로 출퇴근 시간 조정을 통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관계자는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의 투표권을 보장토록 규정하고 있다”며 “이를 제약하거나 거부하는 사업주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어 보장받지 못하는 근로자는 노동청에 신고해 국민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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