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상을 싹틔운 르네상스의 본래 뜻은 ‘복원’이다. 이 말속에는 잃어버린 옛 문화를 오늘에 되살린다는 속뜻이 숨어 있다. 전통문화의 복원을 토대로 자연과 인간을 재발견하게 된 사건으로 정의하는 것이 옳을 듯싶다. 때맞춰 도농교류운동이 대폭 확산되고 있다. 이는 도시생활로 인해 빈사상태에 있는 자연과 인간 기능을 다시 복원해보자는 뜻에서 중세 유럽의 르네상스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얼마 전 TV에서 귀농 다큐멘터리 ‘살어리랏다’를 보았다. 상주시의 신개념 타운하우스 ‘울타리 없는 녹동마을을 아시나요?’가 바로 그것이다. 상주시는 지난해 443가구 805명이 귀농·귀촌해 전년보다 308가구 526명이 늘었다고 한다. 상주시 전체가 슬로시티가 지정된 것이 아니라, 이안면 등 3개 도시가 슬로시티 핵심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중에서도 녹동마을은 울타리가 없다. 30여 가구가 모여 살면서 허름한 빈집들이 목조주택의 전원마을로 변했다. 담벼락을 허물고 조경석과 조경수로 장식한 마을길과 마을 입구의 백련단지는 생태공원으로 조성됐다. 특히 슬로시티를 연상케하는 달팽이 모양의 조형물이 마을 어귀 이정표를 장식하고 있다.
또한 마을이 인접해 있는 곳에는 분도요와 홍로요의 도예촌과 도자기 공방이 위치하고 있는데, 산쪽으로올라가게 되면 상안사가 인접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상안사는 676년에 창건된 조계종 산하의 전통사찰로 석불입상과 석불좌상 등의 불교 문화유산이 보존되어 있다.

귀농촌인 녹동귀농마을은 잘 정돈되어진 큰길과 길가 양쪽으로는 특색있는 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는 대로를 따라 걸어가게 되면 길 양쪽으로 세워진 가옥들이 방문객의 발걸음을 늦추게 한다. 집집마다 너른 마당에는 각양각색의 꽃들을 키우고 있었고, 길가에는 계절을 알리는 꽃들이 심어져 있다.

마을을 걷다보면 알프스 산자락에 위치한 농가를 방문한 듯한 착각에 빠진다. 아기자기함이 깃들어 있는 모습에 들고 있던 사진기의 셔터를 연신 눌러도 보게 된다. 어느 곳에 초첨을 맞추어도 작품사진이 나올 것만 같은 진풍경이다.
마당가에는 외부에서 전해지는 편지를 담아두는 우체통이 집집마다 위치하고 있는데, 빨간색 우체통이 사람들의 시선을 한참 동안 집중시키기도 한다. 어디선가 숨어 카메라를 돌리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만큼 예쁜 모습이다. 방문객들은 마치 영화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으로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옮기면서 모델 포즈를 연신 취해 본다. 녹동귀농마을의 한적한 마을도로를 따라 드라이브하게 되면 절대로 과속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느릿느릿 달팽이처럼 기어갈 만큼 저속으로 차를 몰게 될 듯해 보여 안정감마저 든다.

이렇게 자연의 짝꿍들이 모인 마을들을 ‘자원의 곳간’으로 활용해보자. 마을은 우리 세대는 물론 후손들의 생존을 위한 담보물이다. 또한 마을은 농업인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공적 자산이다. 과거에 농촌마을은 도시의 가치를 지향하며 생활환경을 개선해왔지만, 그 환경이 산업사회의 먹이사슬 속에 농촌마을을 감금해 버렸다. 그래서 도시는 자연과 인간의 기능을 거칠게 다룸으로써 성장해왔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현대로 들어와 도시그룹은 농촌마을에 대해 각양각색의 처방상품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농촌마을은 스스로 처방약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처방약인가. 바로 마을디자인이다. 앞으로 마을디자인은 농촌의 희망이자 자산이며, 신상품이기도 하다. 경기도 마을들도 주민 스스로 희소성의 가치를 살린 마을들의 상품에 대해 서둘러 개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과 식물을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마을디자인의 설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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