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이에 걸맞게 매화꽃 향기와 요리를 팔아보자. 새봄이 되면 섬진강에는 변함없이 매화 강이 흐르고 버들강아지와 노란 유채꽃이 봄 집을 지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 입으로 들어갈 먹거리를 책임지는 농촌은 지금 깊은 절망에 빠져 있다. 농사는 밑지기 일쑤고, 세계무역기구와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파고는 속절없이 밀려오는 사면초가의 형국이다.
그러다 보니 젊은이들은 농촌을 떠나고 농촌은 영세 고령농화하고 있다. 세 명 중 한 명은 65세 이상 노인이다. 쇠약한 노인들에 의존해 농촌의 명맥이 이어오는 셈이니, 그래서 농업이 어렵다고들 한다. 이를 반영하듯 농촌의 미래에 희망을 걸 수 없다면 빨리 포기하는 것이 좋다는 주장도 솔솔 제기되고 있다. 이른바 시장실종, 미래에 대한 기대실종, 농가들의 자신감 실종 이른바 3대 위험증상이다.
여기에다 쌀은 충분하다고 하는데, 곡물자급률은 현재 27%로 턱없이 낮은 실정이다. 많은 음식물을 먹는데 하루 3끼 식사 중 한 끼만이 국내 생산 농산물이고, 두 끼는 수입농산물이라는 뜻이 아닌가, 그렇다면 식량이 남는다고 자랑할 일도 아닌 것 같다. 통일한국의 식량자급률은 몇 퍼센트일까, 통일한국의 식량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식량생산은 산술급수적이고 인구증가는 기하급수적이다’라고 배워왔다. 더욱이 인류사회에 식량부족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경우, 쌀을 제외한 곡물자급률이 5% 정도여서 전 분야의 곡물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주요 곡물가격 상승은 한국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다. 오늘의 농촌을 두고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망진단이 내려지기 전에 인공호흡을 해서라도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농촌을 살릴 수 있는가. 출발점은 농촌에 희망을 불어넣는 현실적 방안을 모색하는 데서 비롯돼야 한다.
몇해 전 일본 고꼬노에읍(九重町)의 라벤다 농원에 갔다. 이 농원은 라벤다 향기와 요리를 동시에 파는 비즈니스가 돋보였다. 농원에서 재배된 ‘라벤다’를 팔고 이를 구경하러 온 도시인들에게 그 향기와 요리를 제공하는 것은 농업의 종합산업화가 아닌가 하고 짐작되었다. 식량만 생산하는 것이 농업이 아니라 도시인에게 향기와 즐거움·평온함을 제공해주는 것도 훌륭한 농업의 한 형태인 것 같았다. 또 농원 입구에 있는 낙농업 목장은 그 지역의 자연경관과 함께 서양의 목장을 연상케 해 관광객에게 인기가 있다. 이를 이용해 직접 짠 신선한 우유로 각종 아이스크림을 직접 제조·판매함으로써 도시 소비자에게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주말에는 100만 엔 이상의 매상을 올린다는 설명이다. 통나무집에서 손수 생산한 유기재배 농산물만으로 각종 요리, 빵, 케이크를 제조·판매하는 한 젊은 농가는 비록 판매액이 소규모이고 찾아오는 손님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자기가 직접 재배·제조·제공하는 식품을 많이 먹고 즐거워하는 소비자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라고 이들은 설명한다.
이제 농업이 힘들다거나 재미없다고 하는 이야기는 그만해야 할 때이다. 아무리 불평한다고 해도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농업의 밝은 모습, 아름다운 모습도 많이 있다. 이를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농업관을 가져야 할 때이다.
우리의 농촌에는 극소수이지만 지역에 따라 밝은 모습이 서서히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다. 새봄이 돌아오면 섬진강변은 온통 매화로 눈꽃을 피울 것이다. 그리고 바로 벚꽃과 배꽃이 그 뒤를 이를 것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의 농촌에도 매화의 향기와 요리를 동시에 파는 농업의 고차산업화의 활성화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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