엥겔지수는 가계의 총지출액에서 차지하는 식품비의 비중을 가리킨다. 엥겔지수가 낮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생활수준이 상대적으로 풍요롭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배고픔지수는 식사를 할 때 포만감을 70~80% 정도 느낄 때 멈추면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식사조절지수다. 먹는 것 앞에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때가 속이 가장 편하다고 느껴지고 위장에 부담을 안 주고 활발한 두뇌활동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엥겔지수와 배고픔지수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삭막한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가치는 줄어들었고, 달나라에도 갔다 왔지만 이웃집에 가서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다.

심지어 먹는 것에 대해서는 못먹어서 배고픈 게 아니고 과식해 탈이 나고, 스트레스 때문에 심리적 배고픔이 생기는 시대다. 즉, 엥겔지수가 낮을수록 상대적으로 심리적 배고픔지수는 커지고 있다.  

그런데 뜬금없이 ‘식사랑 지수를 높여라’라고 주장하는 것은 약간 엉뚱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식사랑 지수를 단순히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지표로서가 아니라 식(食)의 가치를 회복하자는 의미로 ‘심리적 배고픔지수’를 높이자는 얘기다.

이는 엥겔지수가 점차 낮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의 먹을거리와 식(食)문화에 대한 심리적 가치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어서이다.

전 세계 3천 종의 언어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처럼 먹는다는 얘기를 밥먹듯이 하는 나라도 흔치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금강산 구경을 하더라도 밥을 먼저 먹어야 하고, 돈도 먹고, 욕도 먹고, 챔피언도 먹었다고 말한다.

 또 ‘뭐든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하고, 마늘과 쑥을 먹고 사람이 된 곰이 우리의 조상이라고 한다. 심지어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고도 토끼가 계수나무 아래서 떡방아를 찧는다고 한다. 또 새해가 되면 떡국을 먹는데, 그때 우리는 나이도 함께 먹는다.

그래서 우리에게 ‘먹는다’는 말은 두루두루 다 통하는 말이다. ‘겁을 먹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의 심리를 나타내고, ‘말이 먹힌다, 안 먹힌다’ 말하는 것은 의사소통이 얼마나 잘 되는지를 나타낸다.

‘저 사람 사횟물 좀 먹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의 됨됨이와 사회생활이 어떤지를 나타낸다. 이렇게 우리에게 먹는다는 것은 우리의 삶과 생활 속에서 단순히 한끼를 때우거나 생명을 유지하는 것 이상의 의미였다.

하지만 요즘은 어떠한가. 쉽고, 빠르게, 그리고 바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넘쳐나면서 먹는 것을 통해 과거와 같은 사랑·정·나눔의 의미를 찾기도, 공동체 의식을 갖기도 어려워졌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식습관과 편의주의 식생활은 비만과 생활병을 초래, 개인의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이제 국가의 경쟁력까지도 위협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식문화에는 5천 년 동안의 민족의 정신과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만일 이것을 상실하면 민족성과 정체성마저 사라지기 때문이다.

때맞춰 최근 경기농협본부가 연천 새둥지 마을에 ‘식(食)교육 전문농장’ 1호점을 열었다. 식교육전문농장은 어린이들이 농산물의 수확·가공, 음식물의 조리·시식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이다.

‘비만은 생존경쟁을 피하고 수동적인 태도로 돌아서는 퇴행이자 도피이다.’ 「컬쳐코드」의 저자 클로테르 라파이유가 비만을 두고 오래전 한 말이다. 엥겔계수가 낮은 시대에 비만지수를 낮추고, 심리적 배고픔 지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식사랑 지수’를 높이는 것이 해답이다.

식즉명야(食卽命也)라는 말이 있듯이, 특히 아이들이 건강한 식생활을 체험해 올바른 식생활을 실천할 수 있도록 안전한 우리 먹을거리와 생명산업을 지키는 ‘식사랑 지수’ 높이기에 모두가 한마음으로 뜻을 모아야 할 것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